카지노 도박 사이트

[시 읽어주는 남자] 새는 게 상책(上策)이다

카지노 도박 사이트

새는 게 상책(上策)이다

-정진규

새지 않으면 소리가 되지 않는다 음악이 되지 않는다 노래가 되지 않는다 구멍으로 새어야 소리가 된다 막히면 끝장이다 한 소식도 들을 수 없다 새는 게 상책(上策)이다 새지 않으면 사랑도 되지 않는다 몸을 만들지 못한다 새끼를 만들지도 못한다 막히면 끝장이다 새는 게 상책(上策)이다 달도 뜨지 않는 그런 여자 하나가 바다가 출렁대지도 않는 그런 여자 하나가 오지도 않는 보름사리 때*를 부르며 슬피 울고 간다 새는 게 상책(上策)이다

*미당(未堂) 『영산홍(映山紅)』

『밥을 멕이다』, 시인생각, 2012.

새는 일이 생명이고 삶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로티노스(Plotinos)는 모든 존재와 사물의 원천으로 ‘일자(一者)’를 제시한다. 일자는 그 자체로 충일하고 완전한 존재이며, 이 세계의 모든 것은 그로부터 흘러나온 것이라는 게 플로티노스의 그 유명한 ‘유출설(Emanation theory, 流出說)’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세계란 완전한 ‘하나’가 지속적으로 분출하면서 만든 ‘다수’의 범람이라 이해된다. 어쨌든, 플로티노스의 주장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일자라는 존재보다는 일자가 흘러나올 수 있는 ‘구멍’에 있지 않을까, 라는 게 나의 속견(俗見)이다. 내친김에 속내를 더 밀고 나가자면, 창조란 일자 혹은 신이 자신의 몸에 구멍을 내는 행위로도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따라서 일자로부터 새어 나온 인간의 생명 또한 구멍을 내야만 유지되고, 그 구멍으로 뭔가를 흘려내야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즉, 막히면 인간이든 동물이든 또는 사회건 문화건 간에 다 죽고 질식하게 된다는 게 플로티노스의 본의(本意)가 아닐까?

정진규 시인의 시 [새는 게 상책이다]는 ‘유출설’과 긴밀한 연관을 보인다. “새지 않으면 소리가 되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음악의 본질을 간파한 탁월한 직관이다. 이는 아름다움이란 곧 새는 것, 즉 끊임없이 흘러 유동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직관은 미적 인식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에도 적용된다. 흔히들 새는 것을 손해나 칠칠치 못한 행동으로 여기지만 새는 일이 생명이고 삶이다. 제방에 수문이 없으면 둑은 터져버린다. 피리에 구멍이 꼭 있어야 하듯 삶이라는 제방에도 막았다 열 구멍이 필요하다. 새지 않으면 사랑도 되지 않고, 몸도 만들 수 없으며, 새끼를 만들 수도 없다는 시인의 열거는 새는 것이 곧 생명임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생명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는가. 막히면 모두 죽고, 고이면 다 슬프다. “오지도 않는 보름사리 때를 부르며 슬피 울고” 가는 한 여인의 사연은 아마도 새지 못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플로티노스의 유출설이 그리스철학이 도달한 가장 아름다운 직관의 하나라 알려진 것처럼 ‘새는 게 상책’이라는 시인의 표현은 철학적 사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적 직관의 높은 경지를 서슴없이 보여준다.

신종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