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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용의 The 클래식] 아버지보다 뛰어난 음악가로 성장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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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왈츠에 대한 경쟁은 치열했고, 그 속에서도 아버지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인기를 독차지하며 명성을 쌓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장남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이 세계에 뛰어들려 한 것이다.

화려함 뒤 그늘이 많은 음악가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아버지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걸으려 하는 아들이 못내 걱정스러웠고 결국 이를 완강히 반대하게 된다.

“아들아, 음악가의 길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줄 아느냐. 너는 제발 상업에 종사해서 돈을 많이 벌기 바란다.”

그러나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물러설 수 없었다. 자신의 왈츠에 대한 열망과 의욕을 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데뷔하던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한 상태였고 이미 다른 여자와 살림을 꾸린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는 어머니와 동생을 돌봐야 했다. 생계를 위해서라도 음악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꼭 이루어야 했다.

아버지를 피해 어머니의 지원 아래 바이올린과 작곡법을 익힌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폭발적인 데뷔 무대를 시작으로 빈 왈츠계를 단숨에 주름잡게 된다. 그의 나이 겨우 열아홉에 일어난 일이다.

그의 이름을 딴 소규모 오케스트라단과 함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연주회가 열릴 때면 빈 사교계의 고매한 귀족 부인들조차도 한순간 무너져 버리곤 했다. 그는 언제나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고 그를 둘러싼 스캔들 또한 무성했다.

이는 그가 늘 사람들의 중심에 있었고 그만큼 인기가 높았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아들이 음악가의 길을 가는 것을 반대했던 아버지는 나날이 커지는 아들의 음악적 성공을 지켜보았다. 부자간의 대립은 1849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아버지가 이끌던 오케스트라와 아들의 오케스트라가 흡수 통합되면서 진정한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정승용 작곡가ㆍ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