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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아버지의 고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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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

 

                  -이윤학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아버지가 양식장 김을 뜯어온 대소쿠리 지게를 받쳐놓고 숨을 고르고 있겠다 아침나절 양지바른 산모롱이 소나무 가지에 얹힌 눈덩이들 가루를 날리고 있겠다 물이 빠지는 대소쿠리 지게를 지고 일어서는 아버지 짧은 입김 끙 소리 기합에 맞추어 눈 알갱이 굵어진 논배미 어디선가 바짓가랑이 터지는 소리 들리겠다 폭설에서 벗어난 풀들 젖은 말뚝 아래 이끼들 푸르스름 입술을 열고 생기를 찾았겠다 두 손을 모아 누군가를 불러내는 부엉이 우는 소리 창호지 문구멍으로 날아들겠다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 간드레, 2021.

이탈리아의 심리학자 루이지 조야(Luigi Zoja)는 『아버지란 무엇인가』에서 아버지들을 “무거운 짐을 짊어진 역사의 당나귀들”에 비유한다. 아버지들이 인류 역사를 이끌어온 동력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 비유겠지만 ‘당나귀’에 빗댄 게 내심 불편하다. 국어사전에, 당나귀는 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여 부리기 적당하다는 설명이 떠올라서 그렇다. 역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아버지들의 등에 올려진 짐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안다. 또한 그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버거운 것인지도 능히 짐작한다. 부림을 당하는 아버지들의 수고로움에 고마움보다 불만을 먼저 드러내 아버지들을 고립시키는 게 작금의 세태인 것 같아 안타깝다.

이윤학 시인의 시 「휘파람」에 묘사된 아버지의 삶은 ‘반농반어’와 ‘지게’로 응축된다. 반농반어는 사계절 내내 한시도 쉴 수 없는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환기한다. 지게는 고단함의 무게를 짊어져야만 하는 아버지의 거친 숙명을 표상한다. 화자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있겠다’라는 시어로 추측하고 회상한다. 추운 겨울날 물 빠지는 대소쿠리 지게를 지고 일어서는 아버지의 ‘끙’ 소리는 읽는 이의 가슴을 저민다. 아버지의 삶이란 저 ‘끙’ 소리 하나로 다 집약된다. 화자는 ‘끙’ 소리로 일어선 아버지가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두 다리로 버티다 바짓가랑이가 터지는 소리를 먼 곳에서 생생히 듣는다. ‘끙’과 바짓가랑이 터지는 소리는 식구들을 먹여 살리려는 강단(剛斷)의 음상이다. 누군가를 불러내는 부엉이 소리처럼 아버지의 ‘끙’과 바짓가랑이 터지는 소리는 자식들의 따뜻한 미래를 불러낼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춥고, 시리고, 아픈 힘듦과 버팀의 시간이 담겨 있다.

이윤학 시인의 시 「휘파람」은 과잉의 수사로 아버지의 삶을 미화하거나 폄하하는 소란스러운 시들과는 다른 결을 보인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역사의 당나귀들”로 아버지들을 일괄해 비유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시선의 과잉 때문이다. 지나침이 없이 적절한 거리에서 아버지의 삶을 ‘끙’ 소리로 응축해내는 시인의 절제된 시선과 언어가 시 「휘파람」이 갖는 깊은 매력일 것이다.

신종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