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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의 시시각각] 기울어진 운동장, 평평하게 펴면 될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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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 반드시 기억해요. 정권을 찾아오려면 첫째도 언론, 둘째도 언론, 셋째도 언론.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반드시 펴야만 가능합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한 중견 언론인에게서 들었던 충고 내용이다. 전직 대통령 탄핵 이후, 각종 선거에서 패배한 보수정당을 지켜보면서 최소한의 균형조차 잃어버린 정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짙게 묻어 있었다. 그리고 그 해, 어렵게 보수를 통합하며 4ㆍ15 총선을 치렀지만,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다.

선거를 복기해보면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국력 결집에 집권당이 큰 수혜를 보았던 선거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야당 입장에서는 언론의 보도가 선거 내내 불편했다. 코로나 초기 대응 실패로 마스크 파동을 겪느라 국민적 고통이 컸음에도, K 방역을 선전하며 세계 주요 국가들의 코로나 방역 실패와 비교하는 장면이 연일 노출되는 것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과연 언론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유권자의 민심이 야당을 외면하고 여당을 향했을까. 자고 나면 터지는 막말 파동, 혁신 없는 통합, 비호감 이미지의 리더십 등 야권의 패배 요인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물론 균형감 있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 없지만, 그런데도 야당이 국민의 마음을 얻는데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더라면 분명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로부터 꼭 1년 뒤, 익숙한 장면이 정반대의 구도로 다시 나타났다.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 야당 후보의 네거티브 공세에 집중했던 여당은 연신 언론의 문제를 제기했다. 야당 후보의 각종 의혹에도, 이를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는 언론 환경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이런 논리 전개는 각종 편파성 논란에 휘말리며, 선거 내내 야당 후보에 불리한 증언만을 검증 없이 쏟아내었던 김어준 씨 방송에 대한 찬양으로까지 이어졌다. 추미애 전 장관을 비롯한 중량감 있는 여당의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팔 걷어 김어준 지키기에 나섰으니, 진실과 공정은 여전히 진영논리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린 셈이다.

과연 이번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김어준 씨를 제외한 기성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배한 것일까. 아마도 생태탕에 매몰된 여당의 선거 전략이 실패했음은 서울시 25개 자치구 전패 결과를 지켜본 민주당 스스로가 가장 잘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야 정치권이 언론의 편향성을 쉼 없이 외치는 이유는, 몸소 체험한 지난 기억이 워낙 강인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보수의 트라우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수렴한다. 그리고 그 탄핵 열차는 보수 정권에서 출범시킨 종편을 거치며 가속화되었다. 언론의 각종 의혹보도는 살아있는 권력의 견제라는 명제 아래 속보, 단독의 이름으로 모든 뉴스를 장악했다. 훗날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드러난 보도들도 상당했지만 이미 여론은 광화문의 촛불로 들불같이 일어났고 정권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여 뒤, 역사의 반복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번엔 조국 전 장관 가족이 언론의 검증대 위에 올라왔다. 과거 SNS를 즐겼던 그의 말과 글이 스스로를 옥죄었고, 조국은 이미 조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권 전체의 불공정 이슈로 번지면서 내로남불 프레임의 서막을 열게 되었다. 이른바 문재인 정부 레임덕의 출발이었던 셈이다.

여야 가리지 않고, ‘정권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언론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은 점점 더 강경하게 굳어졌을 수 있다. 공정한 잣대로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은 점차 외면당하고, 진영논리에 따른 편 가르기가 언론의 영역에까지 깊이 침투되어 나타난 것이다. 우리에게 불리한 이슈를 전달하는 언론은 적으로 규정하고, 반대로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는 언론은 내 편으로 규정하는 수준 낮은 언론 환경이 지난날 적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지 않았던가.

최근 김어준 씨 방송의 퇴출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오세훈 신임 시장 당선 이후, 과연 얼마나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과거처럼 편파적인 방송을 유지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다른 변화를 갈망하는 시민의 선택에 맞추어 TBS의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연신 언론개혁을 주창하지만, 지상파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던 집권당의 전 국회의원이 어느 날 갑자기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자리를 옮기는 상황을 보면 현 정부의 언론 인식을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공영방송의 라디오 진행을 여당 전직 국회의원이 도맡는 일부터 각종 시사 방송 패널 구성의 편파성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공정’과는 거리가 먼 일 투성이다. 물론 과거 정부 역시 권력의 언론장악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또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그래서 바로 지금이 여야가 서로 주장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펴기에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 선거가 불과 1년도 채 남지 않은 정권 말, 어떤 권력이 차기 국가의 경영을 담보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시기. 그리고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되었지만, 대선에 이어 바로 또 한 번 시민의 선택을 받아야만 하는 신임 서울시장의 임기가 시작된 때. 정치권이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나 진영논리의 언론관을 청산하고, 언론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는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이다. 여야가 합의를 통해 법안을 처리한다면, 권력이 언론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1년 임기의 서울시정에서 시민이 바라는 공정한 방송의 미래를 위해 선제적으로 TBS 조례를 개정하는 것도 의미 있는 진전일 수 있다.

여야가 권력이 바뀔 때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언론을 대하는 내로남불의 위선, 이쪽저쪽으로 기울기만 바꿀 것이 아니라 이제 좀 평평하게 펼 때도 되지 않았겠는가.

김병민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