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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 여행 에세이] 8-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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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가를 좋아한 체 게바라 모습

체 게바라의 시신은 비밀리에 매장되었다가 30년이 지난 후 1997년에 유족을 포함한 볼리비아와 쿠바 합동 조사단에 의해 동부 저지대 바예그란데의 폐쇄된 활주로에서 발굴됐다. 이후 쿠바 정부는 추모 주간을 선포하고 대규모 국장을 치렀고 그가 활약한 산타클라라에는 그를 추모하는 교회까지 생겼다. 2013년 쿠바 정부는 볼리비아의 협조를 받아 체 게바라의 일대기가 담긴 일기와 편지, 신문 기사, 사진, 문서 등을 세계기록유산에 올렸다.

그의 삶과 활동을 돌아볼 때 혁명가로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치가로서는 실패한 인물이다. 그는 단명한 비운의 삶을 통해 상품화된 사회주의 혁명가의 우상에 불과하나 장 폴 사르트르는 그를 ‘금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몇 년 전 볼리비아를 여행했을 때 체 게바라에게 기독교 성인처럼 이름 앞에 ‘성’을 붙인 사진이 있을 정도로 그를 추종하는 사람이 남미에는 많다.

▲ 박물관 내부 빛바랜 사진에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행진하는 모습

어떤 사람은 그를 인류를 사랑하는 재능을 가진 인간적인 혁명가이자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몸을 내던진 혁명가로 평가한다. 하지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 이후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쿠바인들은 무엇보다 우선하여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찾아 몸부림치고 있다. 물론 잘 산다고 하여 행복한 것이 아니고 못 산다고 하여 불행한 것도 아니지만 그늘진 곳에 숨겨진 현실에서 피폐한 사회주의의 몸부림치는 단면을 볼 수 있다.

그 결과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현재 모습이다. 쿠바인들은 스페인과 미국으로부터 독립과 자유를 위해 수많은 생명을 잃어야만 했다. 그들은 혁명으로 국가를 전복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으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진 못하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나라가 됐을 뿐이다.

쿠바의 경제는 생산성과 성장성 추락으로 피폐하였고 민중들 삶의 질도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 결과를 얻으려고 혁명의 깃발 아래 피를 흘리진 않았을 것이고 민중들이 가슴에 품었던 혁명의 본질도 결단코 이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박태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