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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성곽과 능원] 17.충남 보령 충청수영성

아름다운 서해의 보루… 조선시대 충청수군 최고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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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 충청수영성 올라가는 산책길.

‘수영’은 무엇이며, ‘굴강’은 무엇인가?… 예나 지금이나 열악한 수군 지위

왜구들의 침탈이 잦은 경상도전라도는 좌우수영으로 2개씩, 충청도는 오천 수영성 하나로 함대사령부가 전국에 5개였다. 수영의 최고 지휘관은 정3품 수군절도사 또는 약칭 수사였는데, 중앙 조정으로 치면 참의, 오늘날의 차관보급이다.

각 수영에는 한어와 왜어 통역을 각 1인씩 뒀다. 수영이 있던 곳은 아직도 지명에 그 흔적이 남아 있으니, 부산 수영만, 전남 해남 우수영 등이 대표적이다. 또 진해 안골포, 여수 등의 ‘굴강동(굴강로)’ 역시 수영 시설을 지칭한다. 굴강(掘江)은 선박의 정박과 수리·보수, 물자 하역 등을 위한 군사 항만시설로, 방파제와 선착장을 겸했다. 그러나 국어사전에는 ‘[명사] 1. 개골창 물이 흘러나가도록 길게 판 내. 2. 성 주위에 둘러 판 못’이라 해 역사학계 해석과는 거리가 있다. 국어사전의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충청수영성의 영보정. 다산 정약용‚ 연산군 때의 천재시인 읍취헌 박은이 영보정 산천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를 남겼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전통시대 수군은 지상군보다 열악한 지위였다. 최고위 장교의 TO를 비교해 보자. 지상군이나 수군이나 최고 계급은 종2품, 중앙조정의 참판, 오늘날의 차관급이다. 육군은 종2품인 전업 병마절도사가 8명이었다. 수군은 종2품이 삼도수군통제사 단 1명인데, 임진왜란 이듬해 이순신 장군을 임명한 것이 최초다. 이전에는 정3품 수군절도사(약칭 수사)가 최고위 장교로 경상전라에 2명씩, 충청 1명이었다. 그러나 국난을 극복하는 데는 수군의 활약이 훨씬 컸다.

서해안을 지킨 충청수영성… 전성기 수군 8천400명 주둔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성은 해발 400m 야산에 돌로 쌓은 둘레 1천650m의 성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높이 11척이라 돼 있는데,『호서읍지』는 15척이라 기록했으니, 후대에 성벽이 보강된 듯하다. 갑오경장으로 폐쇄될 때까지 서해를 방어하는 성의 역할을 해왔다.

성벽 대부분은 내탁법 즉 안에서 쌓았으나, 서벽 일부는 협축법 즉 양쪽 쌓기다. 동·서·남·북 소서 5곳의 성문에 모두 옹성과 문루가 있었으나 모두 없어지고, 홍예문과 부근 100m의 석축만 남았다. 대추나무가 많아 ‘조성(棗城)’이라 불리는데, 40㎞ 남짓 떨어진 해미읍성이 탱자나무가 많아 ‘지성(枳城)’이라 불리는 것과 대비된다. 해미읍성에는 병마절도사가 주둔해 내포 지역의 방어를 지휘했다.

원래 수영성내에는 영보정(永保亭), 관덕루, 시변루, 능허각 등 주변 바다와 섬을 관측하고 주변 관아들과 통신하기 위한 누정이 여럿 있었다. 전성기에는 병선 142척, 수군 8천400명이 주둔했고, 민가가 700호 이상이나 됐다. 객사 82칸, 벽대청 9칸, 상서헌 9칸, 내·외 동헌과 관청고(官廳庫) 각 10칸 등 청사가 38채나 됐으나 지금은 장교청, 진휼청 등만 남았다.

갈매못 순교성지 예수상. 하늘 향해 양팔을 벌려선 예수상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입구에 선 예수상을 연상케 한다.

장교청은 장교들이 행정을 처리하고 전략을 논의하던 무고주 5량가,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동측 1칸은 온돌방, 서측 3칸은 우물마루 대청으로 꾸며 작전회의와 지휘에 편리하다. 종량 위에 화려한 파련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쳤다. 진휼청(賑恤廳)은 춘궁기에 가난한 백성에게 곡식을 꿔주고 가을에 거둬들이는 곳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2칸에 방을 두고 전퇴를 달고 좌측 1칸은 대청, 우측 2칸은 큰방을 꾸몄다.

성 한 구석,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에 참전했던 명나라 수군장인 계금장군을 기린 청덕비가 있다.

근처 앞바다, 만 입구에는 뾰족하게 깎은 나무말뚝을 물에 잠기게 바닥에 박은 다음 쇠사슬로 연결한 수중 목책(水中木柵)을 둬 적의 접근은 차단했을 것이나, 오늘날 그 흔적은 찾지 못한다. 수중목책은 제포, 영등포, 옥포, 지세포, 조라포, 당포 등 수군의 요충에 두루 설치됐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도 수중목책을 응용한 수중연환 덕분이다. 이탈리아의 수상 도시 베네치아에서는 물속에 나무 말뚝을 박아 세워 수로를 표시한다.

시인들 ‘영보정에 올라’… 천혜의 미항(美港) 오천항

오천항은 아름답고, ‘도미부인 솔바람길’은 애달프다. 2.5㎞ 떨어진 수영 병사들의 옛 훈련지는 가슴 아리다. 병인박해 때 많은 천주교 신자가 순교해 ‘갈매못성지’가 되고, 순교자 5명이 성인으로 시성(諡聖) 됐다. 순교 성지는 대부분 경관이 아름다워 더 처연한데, 갈매못 성지로 접어드는 바닷가 도로는 거의 환상이다.

영보정에 앉아 바라보는 천수만의 일몰은 대한 8경에 꼽을 만하다. 많은 문인이 절경을 감탄하는 시를 남겼으니 이곳 경승은 검증됐다.

다산도 밤늦도록 노닐면서 ‘영보정에서 놀며[영보정연유기(永保亭宴游記)]’를 정자에 걸고, ‘영보정에 올라[등영보정(登永保亭)]’와 ‘영보정 앞에서 달밤 뱃놀이하며[정전범월(亭前汎月)]’ 시 두 수도 남겼다. ‘영후정자(營後亭子)’를 남긴 읍취헌 박은은 17살에 진사, 18살에 과거에 급제한 알려지지 않은 천재다. 20살에 간신 유자광을 탄핵했다가 파직되고 26살에 사형당하니, 하필 연산군 시절이라, 천재도 때를 잘못 만나니 별도리 없구나.

충청수영성의 영보정에서 내려다 본 오천항 앞바다.

영후정자(營後亭子)

지여박박장비익 누사요요불계봉

북망운산욕하극 남래혜대차위웅

地如拍拍將飛翼 樓似搖搖不繫

北望雲山欲何極 南來襟帶此爲雄

땅은 새가 날개 치며 날아오르는 듯하고

누각은 흔들흔들 매인데 없는 배 같아라

북을 바라보매 운산은 어디가 끝인가

남으로 띠처럼 두른 산세 여기가 제일일세.

김구철 시민기자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