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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25.여주박물관

‘여주 역사’ 생생 타임머신... 구석기시대까지 시간여행
1997년 ‘여주군향토사료관’으로 출발
2016년에 신관 신축 ‘박물관’ 재탄생
여마관 2층 올라서면 향토사 한눈에
구석기·청동기·삼국시대 등 유물 전시
황마관에선 세가지 특별한 전시 ‘눈길’
여주 출신 소설가·남한강의 수석·영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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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여주역사실 전경. 흔암리 선사유적지, 중암리 고려백자가마터, 신륵사 등 여주 지역의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다양한 유적, 유물을 전시하고있다. 윤원규기자

여강으로 불리는 남한강은 여주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다. 아름다운 여강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여주박물관은 힘차게 달리는 ‘검은 말’(驪馬)이다. 2017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한 신관 ‘여마관’은 마암(馬巖)의 전설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강 건너 영월루 아래 절벽에 있는 바위 마암에서 누런 말(黃馬)과 검은 말(驪馬)이 나왔다는 전설이다. ‘여주, 강에 새긴 역사’라는 여주박물관 소개 글이 암시하듯 남한강과 여주는 한몸이나 다름없다. 1997년에 ‘여주군향토사료관’으로 출발한 여주박물관은 2016년에 여마관(신관)을 신설하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여주지역의 출토유물이 한자리에 모아지게 된 것이다. 여주박물관은 지역의 역사를 알려주는 풍부한 유물 관람과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황마관에 위치한 류주현 문학전시실에 집필실모습이 전시돼 있다. 여주 출신 소설가 묵사 류주현 선생은 ‘조선총독부’와 ‘대원군’ 등 장편역 사소설을 통해 ‘대하 역사소설’이란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윤원규기자

■ 남한강과 함께한 여주의 유구한 역사를 한눈에

신관인 여마관 1층 로비에 들어섰다. 내부 인테리어도 외벽 못지않게 세련되어 보였다. 박보경 학예연구실장이 특별전에 관심을 가지고 방문한교육장에게 안내하는 동안 로비에서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의 비신(보물 제6호)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정갈한 해서체의 글씨가 마치 어제 새긴 것처럼 선명하다. 비신이 박물관으로 돌아오게 되기까지의 흥미로운 과정을 읽으며 박물관 사람들의 수고와 보람을 생각해 보았다. 보름 전 전화로 약속을 잡으면서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었다. “특별전을 개관하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박 학예연구실장은 방문객을 반갑게 맞으며 2층으로 이끌었다. 여주역사실 앞에서 간추린 여주의 역사를 시작으로 1시간 넘게 안내해 주었다. 입구의 연표는 여주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연양동과 흔암리 구석기와 청동기유적에서 출토된 돌도끼와 돌화살, 물고기를 잡을 때 썼던 어망추 같은 유물을 통해 여주가 아주 옛날부터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고장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매룡동과 연양동에서 발굴한 호박구슬과 회청색경질바리에서 삼국시대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연꽃 모양의 잔과 국화와 학 문양을 새긴 접시와 대접은 고려인들의 예술적 감각이 잘 표현된 유물이다. 여주는 도자의 고장이기도 하다. 천년 세월의 여주도자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중암리 고려백자가마터에서 발굴된 숱한 조각들은 고려인들의 멋과 취향을 알려준다. 고려시대에 선종사원으로 번창했던 고달사와 원향사, 현재까지 사세를 유지하고 있는 신륵사는 여주가 불교의 문화를 간직한 고장임을 알려준다. 원향사지에서 발굴된 동종 청동소종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품격을 엿보게 된다.

975년 고려 광종시대 제작된 보물 제6호 원종대사탑비 비신이 전시돼있는 여마관 1층 로비 전경. 윤원규기자

“여주는 명문가가 많은 고장입니다”라는 관계자의 말처럼 12대에 9명의 정승을 배출한 남양 홍씨, 왕비 둘을 배출한 여흥 민씨, 영의정과 대제학을 여럿 배출한 해평 윤씨가 여주에 터를 잡았던 가문들이다. 임진왜란 때 남한강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 원호 장군과 효종이 북벌을 추진할 때 병조판서로 활약한 원두표를 배출한 원주 원씨 문중에서 기증한 유물이 눈에 띈다. 원두표가 신었던 가죽신의 크기가 놀랍다. “저도 처음 봤을 때 크기에 놀랐어요. 겨울에버선을 덧신고 신었기 때문에 이리 크다고 해요.” 설명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관대, 시호 교지와 교지함은 보존 상태도 아주 좋다.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느끼도록 선조들의 귀중한 유물을 박물관에 기증한 결정에서 명문가의 품격이 느껴진다. 익사공신 윤승길의 초상화에 얽힌 사연도 흥미롭다. “임해군의 역모를 사전에 제압한 공신들에게 광해군이 하사한 초상화로 1613년경에 그려진 것인데, 1623년 인조반정으로 모두 회수했기 때문에 이 초상화가 유일한 익사공신 초상화라고 합니다.” 수백 년 세월이 흘렀지만 초상화에 그려진 조선 관료 윤승길의 눈동자와 수염이 생생하다.

 

■ 세종과 효종의 능을 모시고 정조가 방문하다

여주는 세종대왕의 영릉과 효종대왕의 영릉이 있는 고장이다. 두 기의 왕릉이 있는 고장이지만, 그 자부심은 어느 고장보다 높다. 역사 속의 인물 중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세종의 위엄은 여주의 유명세를 더해 주었다. 1469년 세종의 손자인 예종 임금이 여주 서쪽 북성산으로 천릉하면서 목으로 승격시키고 고을 이름을 여주로 개명했다. 약 200년 뒤에 세종의 영릉(英陵) 옆에 효종의 영릉(寧陵)을 조성했다. 효종이 서거한 지 120년이 되던 1779년에 정조가 여주를 방문했을 때 세종의 영릉 앞에서 “우리나라의 예악문물은 모두가 영묘의 제도가 아닌 것이 없다”면서 여주의 풍요로움을 이렇게 말했다.

“본주(本州, 여주)에는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하는 집안이 많이 있으므로 즐비하게 번화한 것이 서울과 다른 것이 없고 마을이 부성하고 인물이 선명한 것이 마치 저자 가운데에서 보는 것과 같으니 서울로 통하는 큰 고을이라 할 만하다”

황마관 지하 1층에 위치한 남한강 수석전시실. 김정식 선생이 57년간 모은 남한강 수석을 기증받아 남한강의 역사를 다양한 수석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천장은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국가행사의 하나였다. 이런 까닭에 효종의 영릉 천장에 관한 절차를 그림으로 기록한 ‘효종영릉천릉도감의궤’는 반드시 꼼꼼하게 살펴야할 필요가 있다. 명성황후가 쓴 한글 편지와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책가도 병풍이 사람의 발길을 붙든다. 정조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던 책가도 병풍은 멋과 품격을 두루 지닌 문화재이다. 책을 사랑했던 왕 세종과 정조를 떠올리게 하는 유물로 그림 속에 깃든 뜻까지 새긴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여주의 의병항쟁과 3·1운동과 독립운동, 근현대의 교육 산업 교통 새마을운동 건설공사 등 여주의 발전과 여주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한 근현대 자료실도 볼거리가 풍부하다. 현재 우리의 생활과 비교해 볼 수 있어 아이들에게 설명하기에 좋은 곳이다.

■ 여주, 영릉을 품다

구관인 황마관은 여주의 특별한 세 가지를 전시하는 곳이다. 여주 출신의 소설가, 여주 남한강의 수석, 그리고 세종대왕 영릉과 효종대왕 영릉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 대하역사소설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소설가 류주현의 고향이 여주다. ‘조선총독부’와 ‘대원군’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의 생애와 작품세계, 수집한 고미술품은 물론 문인들과 교류한 흥미로운 자료들도 만날 수 있다. 작가가 쓰던 안경과 구두까지 기증한 유족들의 갸륵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2층 조선왕릉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 왕릉의 역사와 특징을 설명한 공간이다. 태조부터 숙종까지 역대 임금들의 글씨를 모은 ‘열성어제어필’과 ‘다섯임금어필첩’ 그리고 세종대왕 영릉의 관리문서, 영릉을 지킨 참봉관련 문서 등 흔히 볼 수 없는 유물을 볼 수 있으니 영릉을 참배하기 전후에 둘러보면 좋은 곳이다. 황마관 지하층에는 남한강 수석전시실이 있다. 수석의 산지로 유명한 여주 출신의 김정식씨가 57년 동안 수집한 수석을 전시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 왕릉의 조성과정이 나열돼 있다. 윤원규기자

황마관에는 지난 10월 12일부터 2020 K-mu seums 지역순회 공동기획전 “여주, 영릉을 품다”가 열리고 있다. 여주박물관은 2019년 10월 국립민속박물관의 2020 K-museums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2020년부터 국립민속박물관과 공동으로 전시를 준비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예산을 지원받아 노후화된 황마관 2층 전시실이 새로운 전시 공간으로 탄생했다. 여주의 역사와 여주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영릉’이 주제다. 여주로의 천릉 이후 여주와 여주사람들의 삶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살펴보는 흥미로운 기획이다. 1부 ‘영릉, 여주에 오다’는 왕릉이 여주로 온 과정과 변화를 살피고 있다. ‘여주목읍지’와 ‘영릉참봉교지’ 등 여주박물관 소장유물과 국립민속박물관의 윤도(輪圖), 국립고궁박물관의 국기판(國忌板) 등 타 기관 소장유물이 함께 전시하고 있다. 2부 ‘여주, 영릉과 함께하다’는 여주사람들의 삶에 자리한 두 왕릉의 의미를 보여준다. 영릉 성역화사업, 세종문화큰잔치, 세종대왕 숭모제전, 한글백일장 등 여주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과 여주시민들의 추억을 담은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 두 영릉과 여주사람들이 오랜 세월 맺어온 특별한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이번 기획전은 12월13일까지 열린다.

박물관 바로 옆에 8개의 보물을 간직한 신륵사가 있다. 나옹선사가 입적한 곳으로도 유명한 신륵사 부도탑에서 선사가 지은 노래를 떠올려 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박물관 탐방을 하며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영릉이다. 세종과 효종이 잠든 영릉을 참배하고 잘 생긴 소나무숲으로 난 ‘왕의 길’을 걸으며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면 기억에 오래 남을 특별한 여행이 될 것이다. 지친 다리는 여주 햅쌀로 만든 밥을 먹으면서 풀면 좋지 않을까.

여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위해 1997년 ‘여주군향토사료관’부터 시작된 ‘여주박물관’은 2016년 7월 여마관을 건립하고 여주의 유물을 모아 전시, 연구하고 있다. 여마관 전경. 윤원규기자

이경석(한국병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