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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칼럼] 갈라치기와 아우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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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의료계 파업, 의정관계, 장관 아들의 병역문제 등에 관한 가짜뉴스(disinformation)로 세상이 혼란스럽다.

가짜뉴스의 탄생은 생각보다 오래됐다. 여러 경로가 있을 수 있지만 민족국가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양치기소년의 이야기처럼 가짜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가짜뉴스가 빠른 시간에 퍼지려면 매체가 필요하다.

과거 문명세계의 정보는 독점적이었다. 소수 성직자 그리고 귀족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라틴어로 특권층만이 소통하며 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했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정보를 접하게 된 것은 인쇄기의 발명 이후였다. 인쇄기의 발명으로 정보는 라틴어의 독점적 정보를 공용언어의 다수 정보로 만들었다.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종교혁명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었다. 라틴어로 이뤄진 성경을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했고 틴데일이 영어로 번역했다. 어려운 라틴어를 대신해 지역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공유하면서 문자 해독력이 급격히 증가했다. 사람들 간의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우리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베네딕트 앤더슨이 주장하는 ‘상상의 공동체’라는 민족의식이 형성됐다.

1678년 영국 성공회 사제인 옷츠(Titus Oates)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뉴스는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졌다. 옷츠는 ‘교황청이 영국 왕실을 붕괴시키려 한다’는 내용의 소책자를 배포하였다. 당시 영국은 종교개혁의 여파로 천주교, 성공회, 장로교 등의 종파적 긴장 관계가 극심했다. 사회적 분열과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옷츠의 뉴스는 기름을 부은 효과가 되었다. 비록 성공회가 영국의 국교로 자리매김했지만 가짜뉴스와 음모론으로 3년 동안 수많은 천주교인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회적 불신과 분열이 옷츠의 가짜뉴스의 필요조건이었다면 인쇄술 발달로 야기된 정보혁명은 가짜뉴스를 확산하는 충분조건이었다.

우리는 왜 가짜뉴스에 빠져들까.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불안한 삶과 불투명한 미래가 주는 불안감 때문이다.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부터 탈출해 생존하기 위한 반응이 심리적 기재가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342년 전 영국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양 진영에서 만들어내는 가짜뉴스로 사회 분열과 불신이 팽배했다.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이 곳곳에서 벌어지며 법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가짜뉴스는 정치지도자들의 선택된 지표와 지원사격으로 왜곡되고 강화된다. 언론 매체와 더불어 SNS, 유튜브, 팟캐스트 등을 통해 빛의 속도로 확산된다. 그리고 다시 정치적 분열로 돌아온다. 불확실하고 답답한 현실에서 명확한 답을 찾고 싶은 마음은 출처나 근원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분노부터 하고 마음속의 불안감을 가짜뉴스로 해소한다. 넘쳐나는 정보는 자기 성찰의 시간을 삭제한다. 남 탓과 구조적 모순을 탓하면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투사로 변신하며 특정세력을 대변하는 세력으로 확대 강화된다.

분석보다는 감정, 합의보다는 갈등, 통합보다는 분열을 앞세우며 보편보다는 특수한 것을 내세우고, 분열을 조장하는 가짜뉴스로 파생되는 양극화를 대체할 방법은 무엇일까. 후설(Edmund Husserl)이 주장한 ‘확신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해보는 중용의 태도인 ‘에포케’가 요구된다. 정치지도자들은 가짜뉴스의 필요조건인 사회적 분열을 강화하는 좁은 정체성의 갈라치기 정치가 아니라 통합적이고 넓은 성격의 국가 정체성을 구축하는 아우르기 정치를 지향해야 한다. 필요조건이 상생의 모습으로 변한다면 충분조건인 정보혁명은 사회 신뢰의 선순환 기제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가짜뉴스로 국력을 낭비하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라 기대해 본다.

김성수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