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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성곽과 능원] 조선 왕조 태실

세계 유일한 태실 문화… 고귀한 ‘생명의 원천’ 엿보다
왕자·왕녀의 ‘태’ 항아리 넣고 엄격히 관리, 명당 자리에 모시려 민간묘 강제로 옮기기도
전국 태실 찾아 훼손하고 바꿔치기한 일본…보존 못한 우리문화, 지금이라도 보호 힘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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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 입구의 석물들.

우리 조상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태(胎)를 소중히 여겼다. 태아에게 생명력을 부여한 것으로 여겨 버리지 않고 보관했다. 왕실은 왕자·왕녀의 태가 국운(國運)과 관련이 있다고 해서, 엄격하게 관리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격한 의식과 절차에 따라 태를 깨끗이 씻은 후 백자 항아리에 봉안하고 기름종이와 파란 명주로 싸고 붉은 끈으로 밀봉한다. 이 항아리를 다시 큰 백자 항아리에 담는다. 전국에서 널리 길지(吉地)를 찾으면, 궁에서 태 봉출식을 거행하고 안태사(安胎使)가 출발했다. 안태사는 길일(吉日)을 골라 현지 지방관의 지원을 받아 태항아리를 묻고, 태주의 무병장수와 복을 빌고 왕실의 번영을 기원했다.

묻는 것도 법도(法度)가 있었다. 먼저 지대석(地垈石)으로 아래와 주변을 받쳐 일종의 작은 석실(石室)을 만들고 태항아리와 태주의 이름과 생년월일 사주를 음각한 지석(誌石)을 넣는다. 다음 개석(蓋石, 뚜껑돌)과 토석(土石, 돌과 흙)으로 덮은 뒤 기단석(基壇石)을 얹는다. 기단석부터가 지표면 위로 나오는데, 이후에도 앙련(仰蓮), 중동석(中童石), 개첨석(蓋石), 복련(覆蓮), 보주(寶珠)가 차례로 얹혀 태실의 높이는 140㎝쯤 된다. 앙련은 위를 바라보는 연꽃 문양이며 중동석은 동자(童子) 모양의 받침대, 개첨석은 처마 달린 뚜껑, 복련은 뒤집힌 연꽃 문양 그리고 보주는 구슬 모양이다.

경북 성주의 세종대왕자 태실군.

■ 태실의 저의(底意)와 민폐(民弊)… 조선 왕실의 전국 명당(明堂) 독점

왕릉은 도성에서 백 리 이내에 둔다는 원칙 때문에 한양 주변을 벗어날 수가 없다. 태실은 다르다. 왕이 조정 중신을 끌고 다니며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으니 멀어도 된다. 그래서 태실은 전국 방방곡곡 명산의 꼭대기 같은 명당을 입도선매하고 민간의 묘소를 강제 이장하고 들어가기도 했다. 명분은 생명 존중이지만 권력을 넘볼 명당자리를 왕실이 독점하려는 얄팍한 발상이 근저(根底)에 깔렸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만 잡으면, 정치를 잘해서 국본을 든든히 할 생각은 않고 항상 잔머리를 굴린다.

왕자가 왕위에 오르면 위엄을 더하기 위해 태실에 석물을 더해 장식하는 ‘가봉(加奉)’을 하고 가봉비를 세웠다. 앞에는 누구의 태인지를 알리는 비석을 세우고 금표(禁標)를 둘렀다. 금표에서 일정한 거리 안에서는 일체의 개간, 벌목, 방목 행위를 금했다. 그 거리는 왕은 300보, 대군은 200보 일반 왕자와 공주는 100보인데, 여기서 1보는 2걸음이며 실제 보폭보다 훨씬 넓은 180cm를 적용했다. 현재 육군에서 행군할 때 1걸음을 80cm 정도로 적용하는데 평균 신장이 훨씬 작았던 조선 때 1보는 비현실적으로 컸고, 금령을 어기면 엄벌에 처했다. 태실은 산에 둘러싸인 산에 두는 것이 보통이라 석물을 산 위로 옮기는 것도 큰일이었다.

전북 전주의 예종 태실.

■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 훼손, 바꿔치기, 약탈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 왕실의 국운을 끊고 백자로 된 태항아리와 부장품을 도굴하려고, 조선 팔도의 길지에 봉안된 태실을 철저히 훼손했다. 태실을 한데 모아 잘 관리하려 한다는 구실을 붙였다. 전국 곳곳의 태실 54기를 함부로 파헤쳐 태항아리를 몽땅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구석으로 옮겼다. 옮기면서 태함을 바꿔치기하고 태를 훼손하고 부장품도 약탈했다. 200평 남짓한 좁은 터에 시멘트 대좌에 똑같은 비석에 일본 연호 쇼와(昭和)를 새기고 일본식으로 담장과 출입문을 붙였다. 총독부 촉탁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하는 일이 이런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태실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제대로 보존하지도 않았다. 조선 왕실의 태실이 훼손당한 것은, 조선 역대 국왕이 정치를 잘못한 책임이 크니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태실 문화에는 국운과 명당을 독점하려는 얄팍한 사고가 깔렸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태실을 보호할 이유가 있는가. 그렇다, 보호해야 한다. 왜냐고? 어떻게 말해도 태실이 우리 문화의 결과물이며 우리 문화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태항아리.

■ 태(胎)의 생명력을 일찍이 알아보다

최근 들어 태반 주사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올 정도로 태반의 생명력이 입증되고 있다. 일부 태반 주사는 코로나바이러스 특효약으로 알려진 렘데시비르와 거의 대등한 효과가 확인됐다고 한다. 왕실의 태실과는 별도로 민간에서는 탯줄을 소중히 보관하다가 아이들 비상약으로 쓰기도 했다 한다. 우리 조상이 태반의 의학적 효능을 미리 알고 태반과 탯줄을 이렇게 소중히 간직하고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정말 대단한 의학적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생명존중의 문화, 세계 유일의 태실 문화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자.

김구철 시민기자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