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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 복원,그 방향을 찾다] 3. 내부 3층구조 본격화

경남, 기존 거북선 모형 복원 한계 지적, 1592년 제작된 3층구조 다시 만들었지만
포혈 없거나 구조 달라… 고증 부실 논란 “현재 모습은 뒤죽박죽 혼합된 형태… 자의적 아닌 올바른 해석 바탕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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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 해상에 전시된 전라좌수영 거북선과 통제영 거북선.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를 토대로 복원됐다.

가지각색의 거북선… 원형 그대로 복원이 관건

거북선유적지가 산재한 경상남도는 2008년 이순신 거북선 프로젝트 용역을 마무리하면서 “기존에 복원된 거북선이 임진왜란 당시가 아닌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 기록을 토대로 한 거북선 복원 및 모형으로 한계가 있다”며 “1592년 이순신 장군 거북선을 3층 구조로 건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해군사관학교가 1980년 1호 거북선 내부를 2층구조로 복원, 30년째 거북선 표준모델로 유지돼 온 것을 뒤엎는 것이어서 충격적이었다. 특히 당시 거북선연구가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던 거북선 내부구조가 2.5층설마저 뛰어넘는 것이어서 이목이 쏠렸다.

정진술 전 해사박물관 기획실장은 “경남도 발표 이전 복원 거북선은 30년 전에 설계된 것들로 그 당시 연구결과를 충분히 반영해 복원했다”며“그러나 법으로 규정한 것은 아니지만 2층구조로 표준모델 지위를 갖는 해사거북선이 있었는데 경남의 3층구조 거북선이 현재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전시되면서 거북선 원형 모습에 대한 국민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천시 광장에 육상 전시된 사천거북선. 1592년 당시 이순신 장군 거북선을 기록을 토대로 복원했다고 표방하고 있다. 같은 층에서 전투원과 노군이 활동하는 모습을 마네킹으로 재현했다. 꼬리 없는 사천거북선의 뒷모습.

■거제 1~2호거북선, 사천거북선, 통영거북선

경상남도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 거북선 제작방침에 따라 2010년 이후 새로 복원 건조된 거북선은 3층구조이며 1592년 당시 임진왜란 거북선임을 분명히 내세우고 있다.

거제시 조선해양문화관 광장에 전시된 거제1호와 대우조선해양 건물 앞 공원에 전시된 거제2호 거북선은 3층구조다. 1층은 병사들의 휴식처, 2층은 노역, 3층은 전투할 수 있도록 건조됐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 제원 추정치로 길이 25.6m, 너비 6.87m, 높이 6.06m, 무게 122t 등의 규모로 제작됐다.

통영 거북선은 전라좌수영 거북선과 통제영 거북선 2종류가 1795년 이충무공전서 기록을 토대로 2012년 3층구조로 제작됐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 시절 1592년 5월29일 거북선을 첫 출전시킨 사천해전의 사천거북선도 3층 구조이다. 실물 크기로 2012년 12월 복원됐다. 길이 25.6m, 너비 6.87m, 높이 6.06m 등의 규모다.

거제시 조선해양문화관 광장과 대우조선해양건물앞 공원 등에 전시된 거제 1~2호 거북선.

■3층이나 내부는 2.5층 구조 등 각종 고증 부실 시달려

경상남도 발표와 달리 이 시기에 실물크기로 복원된 거제ㆍ통영ㆍ사천 거북선들은 제작된 지 1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도 각종 고증 부실 논란에 휩싸여 있다. 확인 결과 내부구조는 3층이 아닌 2,5층에 가깝게 건조됐고 당시까지 학계에서 연구돼 온 1592년 이순신장군 당시 거북선 구조나 형태를 원형대로 복원하지 않았다.

거제1~2호 거북선은 임진왜란 당시 용두가 ‘-’자형으로 현자 철환을 쏘던 통제영 거북선구조이나 이와 무관한 전라좌수영 거북선 용두로 제작됐고 용두 크기(길이 1.34m, 넓이 93.9㎠)마저 축소해 만들었다. 노 또한 좌우현 7개씩 만들어 이순신 장군 거북선과 비슷하다고 언급된 통제영 거북선의 좌우현 20개에 크게 못 미쳤다. 거제 2호는 포혈이 아예 없고 내부 관람이 가능하지만 3층 아닌 2.5층 구조에 가깝다. 기록에 있는 거북꼬리 없이 제작됐다.

통영 거북선이 임진왜란 이후 203년 뒤인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 기록을 토대로 건조됐다고 하나 통제영 거북선 포혈이 72개, 전라좌수영 거북선은 그 절반인 36개 등의 기록과는 달리 통영거북선은 모두 포혈수가 크게 못 미쳤다. 노 또한 좌우현 총 4개에 불과, 통제영 거북선 20개, 전라좌수영 16개 등에 비해 부족했다. 용두에는 임진왜란 당시 현자총통을 이용해 철환을 쏘거나 조선후기 때 등장한 통제영 거북선의 용두에서 유황과 염초를 태워 연기를 내뿜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통영 거북선들은 기록에도 없는 용두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등 전체적으로 고증 부실이라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천거북선도 거제 1~2호 거북선과 통영 거북선 등과 마찬가지로 기록대로 복원하지 않았다. 내부는 3층 구조를 표방했으나 실제 2층 위에 원두막형태의 공간을 만든 2.5층 구조에 근접해 복원했다. 노도 좌현 3개, 우현 7개 등 총 10개에 불과, 통제영 거북선 20개, 전라좌수영 거북선 16개 등과는 차이가 있다. 용두 또한 현자총통으로 철환을 발사할 수 없는 구조로 제작됐다. 2층에는 수군과 노군이 함께 있는 마네킹을 만들었으나 학자들은 3층 구조에서 제각각 존재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거북선 내부구조의 자의적 해석 부실 불러…올바른 해석 필요

거북선 부실 복원 논란과 관련, 정진술 전 해사박물관 기획실장은 “거북선 복원에는 임진왜란 때의 것과 1795년 것을 별도로 구분해 복원할 필요가 있는데 현재 복원된 거북선은 사대를 뛰어넘어 뒤죽박죽 혼합된 형태로 복원돼 논란이다”라며 “구조나 크기, 형태 등이 최적인 이충무공전서의 귀선도설과 그림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아닌 올바른 해석이 복원의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제장명 교수도 “거북선 복원 기본원칙은 내부구조가 3층이고 용두는 전투원의 활동공간과 같은 위치에 놓여야 하며 거북선 등판의 철갑선 재고도 필요하다”며 “이 같은 원칙에 맞게 거북선을 복원한다면 1592년 임진왜란 때 거북선형태에 더욱 근접한 거북선을 국민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은 ‘고려말 1380년’ 등장

북한이 바라보는 거북선 연막전법 과 화약무기 시초는?

거북선이 용두를 통해 유황과 염초를 태워 연막을 만들어 적들로 하여금 눈을 뜨지 못하게 하고 싸울 수 없게 한 연막전법 장치. 북한 김흥규저 거북선 캡쳐

북한은 거북선이 용두를 통해 유황과 염초를 태워 연막을 만들어 적들로 하여금 눈을 뜨지 못하게 하고 싸울 수 없게 한 연막전법에 능했다고 주장한다. 염초는 연소할 때 검은 연기를 배출하는 화약으로 질산칼륨(KNO3), 유황, 탄소 등을 일정한 비율로 섞어 만든 흑색 화약이다.

북한의 거북선 연막장치 사용과정을 보면 바람을 일으키는 수군(발풍수)이 발판을 밟으면 가마에 농축된 유황염초가 연통과 배출관으로 공기압력에 따라 배출판에서 뿜어 올라가 배출되면서 용두에서 흑색화약이 내뿜어진다. 이때 질산칼륨은 산화제, 탄소는 가연제, 유황은 점화촉진제 등으로 작용한다.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는 통제영 거북선이 용두에서 연기를 내뿜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화약무기를 군선에 실은 시기를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이 등장한 33년 전인 고려말 1380년으로 보고 있다. 고려사 권 114 등을 근거로 1380년 8월 화포를 장착한 100척의 고려 군함이 진포 앞바다에 나타난 왜선 500척에 불을 지르고 격멸했다고 주장했다.

유럽에선 1571년 처음으로 포격전이 펼쳐졌는데 반해 진포해전은 세계해전사에서 처음으로 화포를 적용한 해전이었으며 해상포격전의 시초라는 견해다. 거북선의 화약무기도 이 전통을 계승한 화포무장선이었다고 강조했다.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거북선모형은 축소형

거제시 조선해양문화관 광장과 대우조선해양건물앞 공원 등에 전시된 거제 1~2호 거북선.

서울ㆍ경기 등 수도권 등지에는 거북선이 축소형으로 복원돼 전시돼 있다. 이순신 장군 생가가 있는 충남 아산 현충사는 1969년 기증받아 전시된 거북선이 있었으나 고증문제에 시달려 2014년 자진 철거했다. 실물 60% 크기였던 현충사 거북선은 용두가 전라좌수용 거북선 형태의 ‘ㄱ’ 자형으로 포를 쏠 수 없도록 제작됐다. 좌우현 노는 각각 8개로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비슷한 통제영 거북선 노 좌우현 각각 10개와는 차이를 보였다. 앉아서 젓는 서양식 노라는 지적도 받았으며 2층 구조여서 포를 쏘는 포군과 노를 젓는 노군이 같은 층에 모여 전투하는 것과 거북 모양의 꼬리가 없는 모형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서울 용산전쟁기념관 거북선은 실물의 40%크기 축소형으로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 등장하는 통제영 거북선을 모델로 건조됐다. 하지만 통제영 거북선이 ‘-’자형으로 된 용두에서 현자총통으로 철환을 쏜데 반해 ‘ㄱ’자형의 전라좌수영 거북선 용두로 제작됐다. 개판(지붕) 또한 통제영 거북선과는 다르게 복원되는 등 전체적으로 통제영 거북선과 전라좌수영 거북선을 혼합한 형태의 새로운 거북선류로 분류돼 고증 부실 논란을 빚고 있다.

과천국립과학관에 전시된 거북선은 2층 구조의 축소형 모형으로 용두가 ‘-’자형으로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를 바탕으로 복원된 통제영 거북선으로 추정되나 좌우현 노가 10개씩인 통제영 거북선과는 달리 노가 없다. 70개가 넘는 통제영 거북선 포혈수와도 맞지 않게 제작됐다.

사천시 광장에 육상 전시된 사천거북선 내부.

김요섭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