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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옥 칼럼] 가장 재수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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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이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수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했던 엔니오 모리코네가 타계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 중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마음 한쪽이 ‘툭’ 하고 무엇인가 떨어지거나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너무나 가까웠던 그의 음악, 영화팬으로 한 곡쯤 그의 영화음악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 같기 때문이다. <황야의 무법자>를 시작으로 유명한 서부영화 음악부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시네마 천국>, <미션>, <러브 어페어> 등등 명작 속의 명곡들은 셀 수 없이 많다.

80세가 넘어서도 왕성한 창작열을 보여주었던 거장의 사망 소식에 세계인이 애도했다. 교황청 문화위원장은 “모리코네는 자신이 속한 종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의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영혼을 동시에 음악으로 표현했다.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우리 모두는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음악에 영적인 차원을 담은 이 거장은 죽음을 준비한 모습도 남달랐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생전에 스스로 부고를 작성했는데, 사후 바로 이것이 공개되었다.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은 담담하지만 먹먹하다. 그는 자신의 부고에서 “항상 내 주변에 있던 모든 친구들과 한동안 보지 못했던 지인들에게 내 죽음을 알린다”라고 했으며, “방해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장례식을 하기로 했다”는 말로 자신이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작별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한 후에 아내에게 특별히 “가장 고통스러운 작별을 보낸다”는 말로 글을 마쳤다.

종종 특별한 영적 상태에 도달한 고승들이 자신의 죽음을 알고, 혹은 죽을 날을 미리 받아놓고 그날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보통의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준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자명한 명제마저도 잊고 오늘만 영원히 살 것처럼 사는 것이 인간이다. 코앞의 일도 모르면서 그 어떤 성취도 업적도 재산도 명예도 모두 놓고 결국 빈손으로 떠나야 하는데도 우린 매일 뭔가 움켜잡기 위해 그렇게 힘들게 사는 것 같다. 그렇다고 많이 갖게 되고 넉넉히 쌓아놓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 ‘삶’과 비교했을 때 부정적이고 어둡고 삶에서 뚝 떨어진 먼 곳에 있다. 산 사람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재수 없는 일’로 여기기도 하고, 죽음 이후를 위한 화장장이나 추모관 건립 논의가 있으면 우리 동네가 아닐까 예민해진다. 행여 우리 동네로 결정이 되면 그 결정을 철회시키기 위해서라면 시위도 불사하겠다는 것이 보통 일이 되어버렸다. 죽음은 삶과 아주 멀어야 하고 멀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엔니오 모리코네는 91세 노인이었지만 어제까지 건강하게 살아 있던 사람의 거짓말 같은 부고가 드물지 않은 게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이다. 사자(死者) 중에는 불과 며칠 전까지도 자기 삶을 자기 스스로 거둘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떠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기 부고를 미리 쓰고 가는 사람과 황망하게 서둘러 가버린 사람의 삶. 어느 지점에서 길이 달라졌을까 생각해본다.

인간 생명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과 내 목숨은 내가 스스로 거두지 않아도 신이 거두어간다는 것을 늘 가까이 두고 인식하는 삶은 ‘재수 없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반대로 더욱 겸손하게 살아가는 삶이 되지 않을까. ‘유한한 인간의 삶’을 늘 의식하며 겸손하게 사는 것, 이것이 자신들의 죽음을 알고 준비했던 고승들처럼, 보통의 우리가 세속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속(俗)되지 않은 삶의 방식일지 모른다. ‘재수 있는’ 삶이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학생성장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