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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옥 칼럼] 안중근 의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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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최근 우리사회는 코로나19 사태라는 사상초유의 국가적 재난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 한동안 잠잠하던 북한은 연이어 남한 전체가 사정거리에 들어가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애국심은 간데없고 진영논리와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되어 내로남불의 행태로 일관하며 국가적 분열상을 노정하고 있다. 따라서 30대 초반의 나이에 국가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안 의사의 나라사랑 정신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귀감으로 다가온다.

구한말 우리가 일본에게 국권을 강탈당하는 데는 불과 5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그것을 되찾기 위해 우리의 선열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점철된 희생과 대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안 의사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국운이 기울자 합법적으로는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없다고 판단하여 1907년 연해주로 망명하여 의병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1909년에는 11명의 동지들과 이른바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하고 그해 10월 26일에 대한제국과 만주지역을 병합시키기 위해 하얼빈을 방문한 이로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하여 사살했다. 그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을 포함해 구한말 대형 사건에 모두 개입했었고 대한제국을 일본에 강제 병합한 기획자이자 실행자로서 한민족의 원수의 상징적 인물이었기 때문에 안 의사가 민족의 이름으로 그를 처단한 것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3ㆍ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학생운동, 윤봉길ㆍ이봉창 등의 의열 투쟁과 해외 독립군으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역사의 횃불이었다.

안 의사는 31세의 짧은 생애였지만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그가 하얼빈 역에서 울린 총성은 일제하에 숨죽이고 있던 동포들의 가슴에 ‘조국의 독립 정신’을 일깨웠다. 안 의사는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항상 의연하고 우국지사로서 품격을 유지했으며 단 한 번도 자신의 애국적 신념과 대의명분의 정당성을 굽히는 일이 없었다. 따라서 안 의사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초연하게 죽음을 맞았다. 이러한 안 의사의 기개는 일제를 두렵게 했다. 그들은 안 의사의 사형을 집행했지만 시신 인도를 거부하고 비밀리에 매장했다. 안 의사의 묘역이 국내외 한인들에게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안 의사는 북한에서도 20세기 초 애국열사로 평가하며 ‘조선전사’에 저격 장면과 계기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근대사에서 남북한으로부터 동시에 존경을 받는 인물은 안 의사가 유일하다. 중국 정부도 하얼빈시 도리구에 기념관을 세워 안 의사를 추모하고 있다. 안 의사는 중국민족도 귀감으로 삼는 항일투사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2020년은 빼앗긴 대한제국의 국권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다 안 의사가 순국한지 11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의 의거는 침략자들에게 국토는 점령 당할 수 있어도 민족정신과 문화는 절대 정복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는 이러한 안 의사의 나라사랑정신을 청소년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근대사 부분이 누락되어 있다. 이는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으로 긴급히 재고되어야 할 문제다. 청소년들에 대한 올바른 역사교육과 역사적 인식은 국가의 미래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단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권은 코로나19 사태라는 국가적 재난의 위기와 북한의 안보위협까지 가중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파당적 이기주의와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국론분열을 일삼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독립을 위해 초개처럼 목숨까지 던졌던 안 의사와 같은 애국정신으로 무장된 정치인들의 출현이 절실한 시점이다.

유영옥  국민대 교수·국가보훈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