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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수립 100년과 새로운 인천] 상. 독립위해 활약한 애국지사

독립운동가 재조명… ‘인천 미래 100년’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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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주독립과 근대국가 건설의 뜻을 품고 이역만리 이국땅으로 흘러간 인천의 후손들은 새로운 국가 만들기에 진력을 쏟아 부었다. 더욱이 인천과 인연을 맺고 활발한 활동을 한 김구·홍진 선생 등은 임시 정부의 주요 인물로 활약, 현재 대한민국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일조했다. 특히 시선을 끄는 점은 이들의 사상과 의지가 대한민국 2대 도시로 도약하고 있는 인천에 전달돼 새로운 100년을 열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이에 본보는 임정 수립과 독립에 기여한 인천 애국지사들의 업적을 살펴보고, 이를 본받아 완전한 ‘자치분권 수립’이라는 과제 속에서 인천이 나아갈 앞으로 100년의 길에 대해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1919년 4월 11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 연해주와 상하이 그리고 국내에서 각각 수립이 추진돼 거의 동시에 선포됐다. 임시의정원 구성과 대한민국 임시헌장 결의·채택 등을 거쳐 국무총리에 이승만, 내무총장 안창호, 군무총장 이동휘 등을 선출한 뒤 정부 수립을 내외에 선포했다. 이 같은 과정에서 임시정부의 수많은 인물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 지금의 대한민국에 이르렀다.

특히 인천을 기반으로 한 독립 운동가들도 임시정부 안팎에서 활약, 300만 인천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

인천과 인연이 깊은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까지 지낸 핵심인물이고, 홍진 선생 역시 임시정부 수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주요 인사다.

김구 선생은 밀정으로 들어온 일본군 쓰치다를 처단해 1887년 인천 감리영에 수감됐고, 1914년에는 안명근 사건과 신민회사건으로 인천 감옥에 갇혔다.

한국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치려는 김구 선생의 뜻과 구상도 이곳 인천에서 마련된 셈이다.

이때 청년 김구를 돕고자 인천출신 김주경, 유완무 등과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섰고, 김구 선생은 광복 후 첫 행선지로 인천을 찾아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1919년 직후 상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을 맡았다. 이후 임시정부 내무 총장, 국무총리 대리, 국무령에 취임했고 1940년 3월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했다.

김구 선생은 임시 정부 내 활동뿐 아니라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1932년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지원했다.

홍진 선생은 서울에서 수립된 ‘한성 임시정부’가 탄생할 수 있게 한 인물이다.

3·1 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2일 인천 만국공원(자유공원)에서 13도 대표자 회의를 주선했는데, 이 대표자 회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성 임시정부’가 탄생했다.

홍진 선생은 13도 대표자대회를 통해 ‘한성 임시정부’ 각 책임자 명단을 선정한 후 임시 헌법 초안과 명단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통합 임시 정부인 ‘상해 임시정부’에서 평생 활동했다.

항일·학생 운동과 의병활동 등에 몸바친 이들도 있다.

최응순 선생은 인천상업학교(현 인천고) 졸업생과 함께 학병 반대운동을 전개했고, 윤윤용 선생은 3.1운동 당시 일본군에 끌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와 함께 중국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독립군 활동에 뛰어든 김동수 선생, 독립군 군자금 마련에 나섰다가 옥고를 치른 이재연 선생, 의병 활동을 하다 체포된 정기인 선생 등도 있다.

강덕우 개항장연구소장은 “인천에서 큰 영감을 얻어 독립운동을 펼쳐간 독립지사들의 의지를 이어나가야 한다”며 “현재 추진되는 각종 김구 기념관 건립 등도 조속히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재홍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