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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정명 1000년, 경기문화유산서 찾다] 34. 삼봉 정도전의 삼봉집 목판

조선 500년 야심찬 주춧돌… 유교문명의 꿈 ‘결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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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봉집 목판본
삼봉 정도전(1342~1398)은 동아시아 2천여 년의 유학사에서 유일하게 유교 국가를 세운 유학자이다. 유학의 비조 공자도, 공자의 맥을 이은 맹자도, 신유학의 태두 주자도, 그 누구도 유교 국가를 건설하지는 못했다. 유교 국가 조선 건국의 기획자이자 유교문명의 설계사 삼봉 정도전의 위패를 봉안한 문헌사(文憲祠)와 삼봉기념관은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에 위치한다.

삼봉기념관에는 정조 15년(1791)에 제작한 삼봉집 목판이 현재 보존되고 있다. 목판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1988년 5월 7일)된 지 30년이 되었다. 글자를 새기는 각자(刻字) 양식은 양면에 양각(陽刻)이고 반엽(半葉, 반엽은 한 면) 10행으로 1행이 20자로 새겨져 있다. 목판의 재질은 배나무이고 목판의 규격은 길이 56㎝, 폭 21㎝, 두께 3.6㎝이다.

 

삼봉집은 1385년(우왕 11년)에 양촌 권근(1352~1409)의 양촌집에 ‘삼봉 정도전의 문집의 서’라는 서문이 수록된 것으로 보아 이때 처음 간행된 것으로 보이나 그 실체는 전하지 않는다. 태조 6년(1397)에 아들 정진(1361~1427)이 시문 약간을 모아 2권으로 간행한 것이 최초로 알려졌다. 초간본의 탄생이다. 정도전은 초간본이 간행된 직후 1398년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해 조선건국의 일등공신임에도 조선정치사상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저자의 저술은 말할 것도 없다. 이후 60여 년이 흐른 세조 10년(1464) 세조는 삼봉의 증손자 정문형(1427~1501)을 경상도관찰사로 임명한다. 정문형은 이듬해 7월 초간본에 실린 시문 이외의 경제문감, 조선경국전 등 여러 저술까지 7권 4책으로 엮어서 안동에서 삼봉선생집을 간행한다. 이것이 중간본이다. 성종 18년(1487)에는 경제문감별집 등을 모아 120여 장의 목판에 8권 8책으로 속간한다. 중간속간본이라 할 수 있다. 

유형문화재 132호 삼봉집 목판 표지석.
그 후 300여 년이 지난 정조 15년(1791) 정도전이 정치적으로 아직 복원되지도 않는 상태에서 정조는 규장각에 삼봉집을 간행할 것을 지시한다. 이로써 삼봉집은 다시 발간되고 268판으로 제작되어 현재 삼봉기념관 목판고에 보존되기에 이른다. 다만 268판 중 20여 개의 소실된 목판을 복원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고서야 체계적인 관리를 할 수 있었다.

 

1865년(고종 2)에는 경복궁의 전각들이 차례로 완성되자 고종은 조선 건국을 설계하고 수도 한양 건설을 주도했던 정도전의 업적을 ‘유학도 으뜸 공로도 으뜸’(儒宗功宗)이라 높이 평가해 특별히 훈봉(勳封)을 회복시키고 문헌(文憲)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린다. 정도전이 죽은 지 480여 년 만의 일이었다. 삼봉 정도전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삼봉집에는 정도전의 정치철학과 국가경영전략이 녹아 있다. 보통 유학자들의 문집과는 다소 다르다. 삼봉집은 허허벌판의 백지에 새로운 유교 국가의 꿈을 그린다. 백성이 보이고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문명의 길을 제시한다. 정신문화의 축의 전환을 모색한다.

 

이 때문에 삼봉집은 새로운 국가를 개창하고 임금이 불인인지정(不忍人之政)의 왕도정치를 해야 하는 경복궁(景福宮)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종묘,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세운 것으로부터 시작해 왜 경복궁을 경복궁이라고 이름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까지도 자세하다. 시경(詩經) 주아(周雅)편에 ‘군자께서 만년 장수하시고 큰 복(景福)을 받으시기를’이라는 시구를 인용해 경복궁이라고 새 궁전의 이름을 짓고 있다. 왕의 침전으로 지붕에 용마루가 없는 강녕전(康寧殿)은 서경(書經) 홍범편에서 오복 중 강녕을 당호로 삼았다. 

강녕을 뽑아들면 장수(壽), 복(福),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은 다 따라오기 때문이다.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으니’ 반드시 생각하고 정치하라는 뜻으로 왕의 집무실을 사정전(思政殿)이라고 이름한다. 또한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게으르면 황폐되는 것은 필연의 이치이며, 어진이를 구하는데 부지런 하라(勤於求賢)’고 해 근정전(勤政殿)이라고 명명한다. 

정도전은 날마다 일하는 일상의 건물, 드나드는 문, 잠자는 침전 등의 공간에 철학을 부여했다. 공자는 일찍이 논어 자로편에서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하지 못하고, 말이 순하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처럼 정도전은 왜 여기서 잠을 자고 왜 이곳에서 근무하는지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해야 하고 어떻게 행정을 해야 하는지를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건물만 봐도 깨닫도록 작명한다.

삼봉 정도전의 위패를 봉안한 문헌사.
또 지금 내가 처해 있는 공동체가 요구하는 그 철학과 사상을 실천하도록 이름을 명명한다. 하나하나의 건물들의 집합체에 불과한 물리적 공간에 철학을 부여함으로써 유교 국가를 이끌어가는 심장부로 재탄생시킨다. 인(仁)을 흥하게 하는 동대문(興仁之門), 예(禮)를 숭상하는 남대문(崇禮門) 등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나타내는 사대문 역시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한양은 유교 국가의 철학을 물리적으로 구축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몇 해 전 행정수도로 세종시를 건설해 현재 40여 개의 중앙행정기관 등이 세종시로 이전했다. 그러나 그 기획에는 600여 년 전 정도전이 경복궁과 한양에 국가의 비전과 통치철학을 부여했던 것과 같은 문명적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신축건물과 부동산만 있을 뿐이다. 철학이 없다.

정도전은 물리적인 건축물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1394년 태조의 명을 받고 주(周) 육관(六官)의 이름을 모방해 조선의 법전으로 조선경국전을 지어 올린다. 조선경국전은 국가경영의 철학을 제시한다. 그 첫 번째는 보위를 바루는 일이다.(正寶位) 그 보배로운 위(位)를 지키는 핵심은 인(仁)이다. 백성이란 나라의 근본이며 임금의 하늘이어서 임금은 인(仁)의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백성들은 서로 모여 살게 되면 음식과 의복에 대한 물욕이 밖에서 공격하고 남녀에 대한 정욕은 안에서 공격해 동류일 경우에는 서로 다투게 되고 힘이 대등할 경우에는 싸우게 되어 서로 죽이기까지 한다. 

그러니 통치자는 법(法)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서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평화롭게 해 주어야만 민생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조선의 새로운 군주는 인(仁)과 법(法)으로 국가를 경영할 것을 제시한 것이다. 이 조선경국전은 경국대전의 모태가 되었으나 경국대전에는 조선경국전이 제시했던 정치철학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유교 관료제의 형식만 남아 있다.

 

또한 고려말은 가난한 사람은 송곳 꽂을 땅도 없었다. 여기에 혹독한 관리들의 수탈에도 시달려야만 했다. 백성은 더욱 곤궁해지고 나라는 더욱 가난해졌다. 정도전은 이를 타개하기 위한 이론적 작업으로 고려 지배체제의 사상적 지주였던 불교의 사회적 폐단과 사상적 비합리성을 불씨잡변을 통해 비판한다. 유교문명으로의 전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삼봉 정도전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유종공종.
정도전은 경제문감 별집에서 군주의 치도(治道)를 정리하기 위해 최고의 성군이라고 일컫는 요순에서부터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 고려까지 139명의 군주를 분석한다. 결론은 이렇다. 왕조별로 이렇게 많은 군주가 등장해서 정치했는데 탁월한 군주는 요임금과 순임금 정도이다. 나머지 대부분의 군주들은 보통군주들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보통군주들이다. 

만약 보통군주들이 국정을 운영하면서 실패라도 한다면 그 대가는 고스란히 백성이 떠안게 된다. 그러니 과거시험을 통해 관리로 선발되어 국가경영에 대해 이미 검증된 재상들이 그 경륜을 살려 군주와 함께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정도전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보통군주들의 시대에 재상과 간관 등은 어떠해야 하며 백성의 근본으로서 지방 수령들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경제문감을 지어 밝힌다. 그 임금을 요순같이, 그 백성을 요순 때의 백성과 같이하고자 함이었다.

삼봉집 목판은 정도전의 정신적 생명이다. 정치적 사유의 집적물이다. 조선이 탑재된 조선 500년의 주춧돌이다. 유교문명의 꿈이 내장된 칩이다. 정도전의 문명 기획은 지금도 한국인의 정신문화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역사는 삶이다.

 

권행완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편집위원장(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