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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저명 1000년, 경기문화유산서 찾다] 25. 일과 놀이와 삶의 절묘한 만남, 평택농악

두레패·연희패 농악 결합… 신명나는 ‘판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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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겹고 푸진 농악은 한국인의 신명을 일깨워왔다. 꽹과리와 징, 북과 장구소리는 심장과 맥박을 요동치게 하는 힘과 흥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을 신명나게 한다. 농악을 치면 농사일에 지쳐 있던 농민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의젓하고 당당한 농군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다. 이처럼 한국인의 신명은 농악놀이와 함께 분단과 전쟁을 겪고도 경제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하게 한 저력으로 살아있다.

 

농악은 일과 놀이, 삶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은 한국인의 지혜가 녹아있다. 옛사람들은 농악놀이를 매구, 풍물, 풍장, 두레, 걸립 등으로 불렀다. 또 이를 구분하여 연주 예능을 중심으로 공연할 때는 매구친다, 쇠친다라 하고, 악기를 통해 말할 때는 굿물, 풍물이라 불렀다. 또 종교적 기능을 강조할 경우에는 굿, 지신밟기라 하며, 노동 예능으로 볼 때는 두레라 하고, 풍류로 해석할 때는 풍장이라고도 불렀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1-2호 평택농악

지난 7월 8일 평택남부문화예술회관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제11-2호 평택농악 예능보유자였던 이돌천 명인(1919~1994)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추모공연이 벌어졌다. 평택농악보존회에서 마련한 이날의 공연은 최은창 명인(1914~2002)과 함께 평택농악 초대 인간문화재였던 이돌천 명인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후배들이 정성을 모은 푸진 놀이마당이었다.

 

평택농악은 경기도 평택 지방에 전승되던 마을 두레패 농악에 경기 남부의 전문 연희패 농악이 결합되어 평택 팽성읍 평궁리를 중심으로 전승되었다. 소샛들이라는 넓은 들을 끼고 있는 평택은 풍요로운 터전을 배경으로 농악이 성행할 수 있었다. 특히 평궁리는 예로부터 지신밟기, 두레굿 같은 여러 농악이 성행했던 마을이다.

 

평택농악에서 무동놀이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오무동은 난이도가 가장 높은 기예로 꼽힌다. 풍채 좋은 남성(밑동)의 어깨를 밟고 선 어른(중동)의 어깨 위에 어린아이(사미)가 서고, 좌우에 두 어린아이(무동)가 한 손으로는 어른(중동)의 손을 잡고 한 발로는 어른(중동)의 허리를 디디고 두 팔을 벌려 서서 다섯 사람이 하나의 탑을 이룬다. 어른의 대담한 걸음과 당당한 몸짓은 물론 세 아이들의 단아한 태도와 넉넉한 미소에 넋이 빠진다. 오무동 곡마단 2개조가 동시에 공연하는 것을 ‘쌍오무동 곡마단’이라 한다.

 

故 이돌천 명인
■지신밟기, 두레농악, 걸립굿, 비나리, 난장굿

평택에서는 정초에 지신밟기, 여름철에 두레굿, 겨울철에 걸립굿에 농악을 크게 치고, 초파일에 듣대굿, 단오날에 난장굿을 쳐왔다.

 

지신밟기는 정초에 마을의 풍물패가 모여 집집마다 돌면서?풍물을?치고 지신을 밟아주며 쌀과 돈을 추렴하는 세시풍속으로 정월 보름까지 이어진다. 섣달에 풍물을 장만해 두었다가 정초에 지신 밟는 날 오전에 쇠꾼들이 서낭기를 앞세우고 풍물을 치며 당에 가서 당굿을, 마을의 큰 우물에 가서 샘굿을 치고 집돌이를 한다. 대문 밖에서 수문장굿을 치고 집 안으로 들어가 우물굿, 터주굿, 조왕굿, 고사, 마당굿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두레농악은 협업이 절실한 모내기부터 가을걷이에 이르는 기간에 이루어졌다. 짧은 시일에 품이 많이 드는 모내기를 할 때면 반드시 두레가 행해졌다. 이처럼 두레농악은 모내기에서 시작되어 세벌 김매기 때까지 행해진다. 세벌 김매기가 끝날 때쯤인 백중날에 ‘백중놀이’또는 ‘호미씻이’라는 이름으로 마을 공터에서 술과 음식을 차려 놓고 판굿을 하며 걸판지게 놀았다.

 

걸립굿은 크게 촌걸립패와 절걸립패로 나눈다. 촌걸립은 공동기금을 마련하거나 특별한 경비를 모을 필요가 있을 때 이루어진다. 초청된 전문연희패는 집집마다 다니면서 풍물을 치고 고사를 통해 축원을 해준 대가로 돈이나 곡식을 받았다. 거둔 재물은 걸립을 요청한 쪽과 연희패가 나누어 가졌다. 절걸립패는 사찰의 수리나 중수 같이 절에서 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절과 연희패 간에 계약을 맺고 행하는 걸립이다.

 

평택농악은 걸립을 주로 했던 전문연희패를 모체로 발전했기 때문에 고사소리(비나리)가 발달되어 있다. 평택농악의 초대 예능보유자였던 최은창은 당대에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비나리꾼이었다. ‘고사 잘하기는 최은창이요, 돈 잘 뺏기는 김복섭이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지신밟기나 걸립을 할 때, 화를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주기를 비는 사설이 여러 군데 들어간다. 

이 중 짧고 간단한 것을 지신풀이라고 하며, 마지막으로 대청마루에 차려놓은 고사상 앞에서 하는 소리를 고사소리 또는 비나리라고 한다. 고 최은창 명인과 더불어 이성호도 고사의 명인으로 오늘날 사물놀이패 비나리의 원조라 불린다. 김용래, 김육동, 이영옥이 받아주는 뒷소리는 고사꾼의 소리를 푸짐하게 받쳐준다. 김용래가 치는 고사반주 북소리는 일찍부터 최고로 평가되었다.

 

난장굿은 정기 장날 외에 임시로 특별히 열리는 장날에 벌어진다. 풍성하고 넉넉한 명절을 맞이하기 위해 벌인 난장이 파일난장과 백중난장이다. 난장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아 시장을 흥성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전문기예를 가진 풍물패를 불러다가 장터 한가운데서 놀게 하는 것이 난장굿이다. 이런 난장굿은 평택을 비롯해서 안성·오산·용인·수원 등 경기남부에서 자주 이루어졌다.

 

판굿은 굿패들이 여러 가지 놀이와 진풀이를 순서대로 짜서 갖은 기예와 재주를 보여주기 위해 벌이는 것으로 지신밟기나 걸립을 하면서 집집마다 마당씻이로?하던 농악놀이가 확대된 것인데 이 또한 전문연희패가 판을 주도했다.

 

故 최은창 명인
■명인 최은창과 이돌천 그리고 김용래

평택농악의 토대를 구축한 최은창 명인(1914~2002)은 평택에서 태어나 마을 두레패 상쇠에게 꽹과리를 배웠는데, 16세 때 두레패의 상쇠를 맡았을 만큼 기량이 뛰어났다. 이후 전문연희패에서 활동했으며, 직접 절걸립 행중을 꾸려서 전국을 무대로 활동했다. 평택농악을 결성하여 평택농악의 원형을 완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1985년 평택농악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최은창은 초대 인간문화재가 되었다.

 

최은창과 함께 평택농악을 이끌어 온 이돌천 명인(1919~1994)은 천안에서 태어나 12세 때부터 무동으로 농악을 시작했다. 1980년 평택농악을 결성할 때 합류하여 1985년 초대 인간문화재가 되었다.

 

현 인간문화재인 김용래 명인(1939~ )은 천안에서 태어나 13세 때 난장패에 사미로 들어가 처음으로 농악을 시작했다. 18세 때 상모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때 그를 가르친 스승이 바로 평택농악의 명인 이돌천이다. 1987년 평택농악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받았으며, 2000년 인간문화재로 인정받아 현재까지 평택농악의 보존과 전승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무동놀이의 체계를 확립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사라진 무동놀이의 기술을 복원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김용래 명인
■일과 놀이의 통일

평택농악의 판굿은 입장 및 인사굿-돌림법고-당산벌림1-오방진-돌림법고-당산벌림2(찍금놀이·절구댕이법고놀이)-사통백이-돌림좌우치기-합동좌우치기-쩍쩍이춤(연풍대)-돌림법고-개인놀이-무동놀이-12발 채상놀이-인사굿의 순서로 진행된다. 주목할 부분은 당산벌림 2에서 놀아지는 찍금놀이와 절구댕이법고놀이이다. 

농사를 짓는 흉내를 내는 이 놀이는 두레농악과 연희농악을 연결시키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찍금놀이는 판을 이끄는 상쇠가 무동과 법고잽이들을 차례로 불러내 함께 노는 것이다. 삼채 첫 장단에 앉고, 두 번째 장단에 오른손을 땅에 짚었다 뗀다. 세 번째 장단에 왼손을 땅에 짚었다 떼고, 네 번째 장단에 양손을 땅에 짚었다가 다섯 번째 장단에 일어나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렇게 손을 번갈아 땅에 짚었다 떼는 것은 모내기하는 동작을 본 뜬 것이다.

 

버나돌리기는 쳇바퀴나 대접을 돌리는 묘기로 법고잽이들이 진행한다. 버나돌리기는 원래 남사당패 6개 놀이의 하나로, 다른 지역의 웃다리농악에서는 보이지 않는 버나놀이가 평택농악에서 연행되는 것은 평택농악과 유랑전문연희패와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평택농악을 한두 번 보아서는 구성과 흐름을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나 평택농악은 처음 보는 사람도 쉽게 빠져들 만큼 매력적이다. 역시 우리의 몸짓과 소리는 공연되는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는 게 가장 흥겹고 기분이 좋다. 농악의 흥겨운 가락에서 노동으로 지친 몸을 춤사위에 맡겨 생기를 되찾았던 선조들의 슬기가 그립다.

 

늦여름 더위가 절정이다. 평택농악의 흥겨운 가락과 활달한 춤사위에서 선인들이 누렸던 멋과 여유를 찾아보면 어떨까.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