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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현장체험] ‘여울림터’ 학대노인 요양보호사

주름 만큼 깊이 패인 마음의 상처…재롱 필살기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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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 시간에 맞춰 커다란 접시에 반찬을 옮겨담고 있다.
가족으로부터 학대를 받은 어르신들의 사연은 취재를 통해 수없이 봐 왔다. 

하지만, 이들을 보살펴주는 쉼터가 있다는 사실은 나에겐 낯설었다. 전국에 이런 쉼터 16곳이 운영되고 있다. 인천에선 이곳이 유일하다. 

자식이나 배우자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입소한 어르신들이라면 마음의 문 또한 굳게 닿아놓았을 것이란 걱정이 앞섰다. 믿었던 가족들로부터 학대를 받아왔다면 몸과 마음 모두 피폐해졌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병든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고 친자식 이상으로 보살펴주는 곳이 학대피해 노인 전용쉼터인 ‘여울림터’이다. 어르신들을 24시간 보살피며 수발을 드는 ‘학대노인 요양보호사’를 체험해봤다.

 

꽁꽁 얼었던 마음을 녹여 드리겠단 거창한 욕심보단, 살갑게 해드리며 재롱을 부리다 오겠단 생각으로 쉼터를 찾았다.

 

■ 가정집보다 더 가정적인 ‘여울림터’

일반 요양원과 비슷한 공동생활 시설일 것이란 생각으로 미리 알려준 주소로 향했다.

쉼터라기보단 잘 꾸며진 고급빌라란 표현이 더 적당했다. 약 155㎡ 규모의 빌라 안에선 요양보호사 3명과 사회복지사 1명이 나를 따뜻하게 환영해주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어르신들도 ‘1일 요양보호사’로 소개하자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올해로 75세인 한 할머니는 고부갈등으로 아들에게 폭행을 당해 2주간의 입원치료를 마치고 이곳으로 온 분이다. 다른 할머니 한 분은 남편의 폭력에 못 이겨 집을 나왔다가 이곳에 왔다.

쉼터에 입소한 어르신들은 3개월 정도 가족들로부터 격리를 시킨 후, 본인 희망에 따라 가정으로 복귀하거나 요양원으로 모신다.

 

학대피해 어르신들의 심리치유를 위해 마련된 민요교실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장구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온 분들이지만, 학대받은 어르신들이라 믿지 못할 정도로 표정이 밝았다.

쉼터에 들어서자마자 요양보호사들의 점심 준비가 한창이다. 한 할머니는 요양보호사를 거들며 음식 맛 잘 내는 비법을 전수해주고 있다. 다른 할머니는 TV 드라마를 보며 요양보호사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는 화목한 분위기다.

친부모 이상으로 극진히 모셔온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들의 노력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어르신들을 최대한 편안하게…

곧바로 점심 준비를 서둘렀다.

한 할머니와 함께 바구니를 들고 빌라 옥상에 있는 텃밭으로 향했다. 풋고추를 조금 따서 여름철 입맛 돋울 반찬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옥상 텃밭에는 어르신들이 소일거리로 키우는 고추와 토마토 등 온갖 야채와 과일들로 가득했다.

 

어르신들이 텃밭을 가꾸며 여가생활을 즐기라는 취지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마련해 준 공간이다.

“매운 음식 좋아하면 점심때 먹을 수 있게 청양고추를 많이 따야지.”

같이 고추를 따던 할머니가 정감 어린 목소리를 건넸다.

고추 한 바구니를 가득 채워 부엌으로 향했다. 앞치마를 둘렀다. 처음 걸쳐보는 앞치마라 어색하기도 했지만 제법 어울려보였다. 뷔페에서 본 듯한 새하얀 큰 접시에 다섯 가지 반찬을 조금씩 담았다.

 

학대피해 어르신들이 가꾸놓은 옥상 텃밭에서 한 할머니와 고추를 따고 있다.
곧바로 요양보호사의 꾸지람이 귀청을 울렸다.

“어르신들이 드실 건데 반찬들이 안 섞이게 접시에 예쁘게 덜어 드려야죠.”

접시에 올려놓은 열무김치 줄기 하나가 삐져나왔던 것이다. 학대받은 어르신들을 편안하게 해드리기 위해 요양보호사들이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5년째 이곳에서 일하는 김정연 요양보호사(49·여)는 “마음이 많이 아픈 상태로 오신 분들이라, 처음에는 정서적으로 가라앉아 있는 게 보통”이라며 “우리가 먼저 딸이나 손녀처럼 친근하게 다가가고 세심한 것까지 신경을 써드리면 이분들도 편하게 대해주시고 즐겁게 생활을 하신다”고 전했다.

 

■ 매일 운영되는 ‘정서지원 프로그램’… 즐거움 선사

2시간 정도의 휴식시간을 가진 후 오전 10시가 되면 어르신들의 지루함을 달래들이기 위해 심리치유와 정서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민요교실과 미술치료를 비롯해 종이접기, 무용, 원예 등 프로그램도 매일 바뀐다.

 

쉼터를 찾은 이 날은 민요교실이 열렸다.

외부에서 초빙한 강사의 장구 장단에 한바탕 신명나는 노래마당이 펼쳐졌다.

요양보호사들과 ‘내 나이가 어때서’를 따라 부르던 할머니들은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며 박수를 치며 흥을 마음껏 즐겼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이용할 간이침대를 다른 방으로 옮기고 있다.
40여분 간 진행된 민요교실이 끝난 후에는 치매예방을 위한 퍼즐 맞추기 게임이 벌어졌다.

요양보호사들이 커다란 그림 조각들을 흩트려놓으면 어르신들이 직접 그림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는 방식이다.

 

입소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는 한 할머니는 능숙하게 잘 맞추신다는 칭찬 한마디에 “내가 어릴 적에 공부 꽤나 했지”라며 웃어넘겼다.

점심식사 후에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인근 공원에 산책을 하는 것도 요양보호사의 일과 중 하나다.

 

오후에는 요양보호사들이 어르신들을 모시고 간석동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대상포진 예방주사 접종을 위해서다.

정희남 인천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어르신들이 고령이다 보니 건강을 챙겨드리는 것 또한 중요한 업무 중 하나”라며 “예산이 부족하다보니 외부 후원을 받아 예방주사나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늦은 오후부터는 어르신들은 자유시간이지만 요양보호사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혹시라도 학대를 했던 가족들이 찾아와 위해를 가하거나 어르신들이 쉼터를 나가 길을 잃을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외출하는 어르신에게는 GPS에 연결된 위치추적장치를 주머니에 꼭 챙겨드린다.

 

학대피해 어르신들과 퍼즐맞추기 게임을 하고 있다.
■ 요양보호사 ‘1인 다역’… 낮은 처우에도 최선

쉼터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들은 매일 8시간씩 3교대로 근무한다. 이들에겐 휴일이나 명절이 따로 없다. 3∼4일만 휴가를 내려고 해도 몇 안 되는 다른 직원들이 빈자리를 대신 메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일과는 단조로운 것처럼 보이면서도 사실 모두가 ‘1인 다역’을 맡고 있다.

음식을 만들 때는 요리사가 돼야 되고, 새로 입소를 한 어르신에게는 심리치료 상담도 한다.

가끔씩 어르신들이 투정을 부리거나 역성을 낼 때면 효성이 극진한 자녀 역할까지 해야 한다.

시설물이라도 하나 고장 나면 직접 수리도 한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목욕도 시켜드린다.

하지만 업무강도에 비해선 이들에 대한 처우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월 급여가 150만 원이 안 돼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수준이다. 부실한 처우에도 이들에게 힘이 되는 것은 어르신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이다. 일부 어르신들은 퇴소를 하고 난 이후에도 요양보호사들과의 인연을 잊지 않고 쉼터에서 진행하는 나들이 행사에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쉼터 직원 김미숙씨(45·여)는 “아무래도 이곳에 입소하신 어르신들이 모두 마음의 상처가 많으신 분들이다 보니, 우리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면 굉장히 고마워하시고 당신들 때문에 고생이 많다며 마치 친딸처럼 생각해주신다”고 말했다.

 

김준구기자

사진=장용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