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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식 칼럼] 탄핵 이후의 민주주의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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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동을 떴다.’

 

골목길에 숨어 있거나 찻집에 앉아 있다가 약속시간이 되면 구호에 맞추어 거리로 뛰쳐나오는 기습시위에서 첫 구호를 외치는 것을 우리들은 ‘동을 떴다’라고 했다. 87년 신촌사거리. 이미 기습시위를 대비한 전경들이 곳곳에 진을 치고, 청재킷을 입은 백골단은 시위주동자를 체포하기 위해 대기하는 순간, 구호가 외쳐진다. 

최루탄이 터지고 대열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면 시위자들은 골목길을 따라 각자 흩어졌다가 다시 거리로 나왔다. 대학생활 대부분을 우리는 함께 ‘동’을 떴다. 그렇게 흩어졌던 50대들이 2016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앞에서 ‘동’을 떴다.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나는 모습으로 2016년 겨울 광장에 모였다. 촛불은 분명 이전의 시위와는 달랐다. 집회라면 항상 존재하던 조직적인 참가자들, 정형화된 구호, 붉은 머리띠, 운동가요 등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밀리면 천천히 움직이고 서면 함께 섰다. 조급함이 없고 긴장감도 없다. 함석헌 선생의 표현대로라면 ‘씨알의 꿈틀거림’ 그 자체였다.

 

2차 행진이 시작될 무렵 인사동 어느 식당으로 모여들었고 대화의 주제는 대학시절 함께 거리로 나왔던 87년 항쟁이었다. 이제는 당시를 평가할 기억도 없지만 그래도 한마디씩 입을 연다. 

시민혁명을 일궈냈음에도 7~8월 노동자투쟁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는 평가, 경제민주화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거나 우리 스스로 돈의 탐욕에 눈이 멀어 민주주의가 농락당하도록 방치했다는 회한도 나온다. 경제성장의 달콤함에 취해 커지는 빈부격차를 애써 외면한 것. 기회가 사라진 젊은이들에게 오히려 그들 탓으로 돌렸던 것에 대한 미안함을 쏟아낸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것은 친일분자들과 군사독재자 무리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용서하고 잊어버렸다는 것. 이번 시민혁명은 철저한 인적청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를 엿보다 권력에 편승한 자들이 주도하는 대한민국을 더 이상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사실 우리역사는 중요한 시점마다 피흘려 일권 낸 시민혁명을 통해서도 인적청산을 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정부수립 후 국민들의 열망을 받고 출발한 반민특위는 친일인사들의 조직적인 반대로 682건을 취급했지만 재판을 종결한 건은 38건에 불과했다.

이들 대부분도 2심에서 석방되거나 병 등을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결국 반민특위는 친일분자들에게 면죄부만 주고 말았다. 87년 민주항쟁도 인적 청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야당 일부 인사들의 권력욕이 군사독재자들과 함께 권력을 나눠가지면서 시민혁명은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인적청산에 대한 열망은 대한민국의 과거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성과 참회록이 돼야 한다. 또 탄핵정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웃거리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이용하는 자들에 대한 평가 기준이 돼야 한다. 광장의 민심은 국민의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자와 자신과 자신의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 자들에 대한 분리의 목소리다.

 

국민들이 촛불로 보여주는 명령은 명확하다. 즉시 탄핵이다. 더 나아가 그 부역자를 심판하라는 것이다. 그 명령을 어기는 자를 이번만큼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민들 마음에는 이미 탄핵이 이뤄졌다.

 

오히려 국민들은 탄핵 이후를 생각하고 있다. 정치권은 권력을 잡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권력을 잡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박대통령과 그의 부역자들에 대한 청산은 선결 과제이지만 야당도 왜 권력이 필요한지를 그 권력이 어디서 나왔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오로지 권력을 얻고자 하는 탐욕만 보인다면 그 부역자와 다를 바가 없다.

 

이제 정치권은 주권자가 주인이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한 그림을 보여 주어야 한다. 여기에는 자유, 평등, 인권 등 민주주의의 기본개념이 지켜지는 사회로의 전환이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탐욕의 사회가 아니라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의 가치과 상호 존중되는 사회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평화적인 촛불집회는 어쩌면 낭만적인 시민혁명이다. 하지만 평화적이라는 이름의 시민혁명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완성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의 해묵은 이념논쟁이 되거나 야당 간의 권력 다툼으로 이어질 경우 광장의 촛불은 혁명의 횃불이 될 수도 있다.

 

최종식 미디어전략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