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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섭 칼럼] 지자체 파산제는 정치적 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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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지방자치단체 파산제 도입’을 시사했다.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심각한 재정위기에 놓인 지방정부의 재정 건전성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이라며 밝힌 극약처방이다.

황 대표는 “100조원이 넘는 지방정부 부채와 72조원이 넘는 지방 공기업 부채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제 부채와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며 “지방 파산제도 도입을 깊이있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때 맞춰 일부 중앙언론은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도 이제 도입할 때’ ‘지방정부 파산제 도입할 때 됐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동조했고, 일부 전문가들도 지자체 파산제를 지지하고 나섰다.

반면 민주당은 지방 재정이 비상 상황이라는데 공감하면서도 지자체 파산제에 대해선 ‘지방자치제도를 무시하는 발상’ 또는 ‘공천 폐지와 파산제 연계는 정략적 계산’ 이라며 반발했다.

지방자치 근간 흔드는 발상

그런데 정작 지방정부는 생각보다 조용하다. 침묵하고 있다. 지자체 파산제가 시의적절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6ㆍ4 지방선거를 의식해 여당에 밉보이면 공천을 못받을까봐 눈치를 보고있는 건지 모르겠다. 일부 자치단체장은 재정 악화가 자기가 저지른 일이라 가슴이 뜨끔할 수도 있겠다.

황 대표가 지자체 파산제 도입 의지를 밝힌 것은 선거를 의식한 일부 지자체장들이 전시성·선심성 행정을 남발하며 지방 재정을 악화시키는 것을 막겠다는 조치로 해석된다.

지자체 파산제는 무분별한 재정사업을 추진해 정상적인 행정 수행이 어려운 지자체의 빚을 중앙 정부가 청산해주는 대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제도다. 부채비율이 일정 기준을 넘어선 지자체에 파산 선고를 내리고, 예산을 통제하거나 사업·인력 구조조정 등의 조치를 취하는 방식이다.

지자체 파산제는 지방자치제가 본격화됐던 1995년부터 제기됐지만 정부와 지방, 정치권 사이의 이견으로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민주당 집권 때인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서도 도입을 검토했으나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2010년 부자도시로 꼽혔던 성남시가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하면서 지자체 파산제 도입 논의에 불이 붙었으나 여야간 책임 공방만 벌였을 뿐 정책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지자체 중 상당수가 재정 위기를 겪고있는 게 사실이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 전국의 지자체 부채(지방채 기준)는 27조1천252억원이다. 여기에 지방공기업 부채 등을 합하면 100조원이 넘는다. 용인시는 예산 대비 부채 비율이 39%에 달하고, 인천시도 37.6%에 이른다.

이는 민선 단체장이 선심성ㆍ과시성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한데다 국제행사 등에 과도한 예산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또 재정 위기를 지방채 발행이라는 미봉책으로 대응하다 보니 빚만 늘어 재정 건전성이 악화된 것이다.

불합리한 세제구조 개편 먼저

그렇다고 지자체 파산제가 해법은 아니다. 지방재정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불합리한 세제구조 때문이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대 2 수준인 ‘2할 자치’로는 지자체 재정 건전성은 요원하다. 최소 4할의 재정권을 지방에 넘겨줘야 재정분권이 이뤄질 수 있다. 일본만 해도 지방세 비율이 50%에 이른다.

정부와 정치권의 무리한 복지정책 추진으로 지자체가 부담해야 하는 매칭비 증가도 지자체의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지자체에 떠넘겨지는 복지예산, 불합리한 세제구조 개편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지자체 파산제란 규제만 내놓는 것은 자치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다. 중앙에 치우친 세제구조 속에서 파산제 운운하는 것은 앞 뒤가 맞지않는다.

더욱이 파산제 도입 검토 발언이,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 논의가 한창인 시점에 나온 것은 공천 폐지에 대한 물타기 전략으로 보인다. 공천제 폐지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려는 꼼수로 비쳐진다.

지자체 파산제는 지방자치에 역행하는 중앙집권적 발상이다. 지방자치제 부활 23년을 맞아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구현될 수 있는 행ㆍ재정적 분권을 위한 방안부터 마련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