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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호의 이미지읽기] ‘하얀 눈을 가진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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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을 가진 소녀’가 있다. 소녀는 고양이, 도깨비, 괴물로 불린다. 얼마 전 TV에 방영된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된 사연이다.

이제 5살인 소녀는 또래의 아이들과 자유롭게 어울릴 수 없다.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가 소녀와 함께 있기라도 하면 기겁을 하고선 도망친다. 손가락질 하며 괴물이라고, 전염병을 옮긴다고 이야기하는 어른들.

심지어 한 남자는 손가락으로 아이의 눈꺼풀을 뒤집어 내려 눈동자를 확인했다고 한다. 이미 주눅이 들대로 들어버린 아이는 언제부턴가 낯선 사람만 보면 엄마의 등 뒤에 숨는다. 하지만 소녀의 엄마조차도 온전한 방패막이 되어주지 못한다.

엄마는 소녀와 같은 눈을 가진, 선천적으로 멜라닌 색소가 부족해 파란 눈으로 세상에 맞서 살아왔다. 그녀는 결혼 후 가진 아이가 자신을 닮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자신이 경험한 세상의 벽을 아이가 다시 겪지 않게 끔 하고 싶었을 게다.

우연히 접한 가슴 먹먹해지는 사연은 이 사회에 만연한 소수자를 바라보는 인식의 현주소를 꼬집었다. 단지 눈동자의 색이 틀리다는 이유만으로 감수해야하는 차별의 장애물을 개인의 힘으로 넘기에 버거워 보인다.

여기 ‘하얀 눈을 가진 사내’가 있다. 사내의 눈동자에는 안개처럼 자욱한 무엇이 가려져있다. 초여름 습한 날씨 탓에 내려온 안개처럼 뿌옇게 가려진 그의 망막은 심각한 질환으로 인해 하얀색으로 변해버렸다.

그의 눈동자는 하얀색이지만,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어둠일 것이다. 짐작한대로 사내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으로 단 한 번도 시각적인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가 바라본 세상은 크고 작은 소리들과 손으로 만져지는 무수한 촉각적 체험의 결과물이다.

그의 하얀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그것은 적어도 파란 눈의 모녀가 겪은 그것보다 몇 배는 고단했으리라. 모든 장애가 그렇겠지만, 그 중에서 시각을 잃었을 때 포기해야하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많다.

어느 휴대폰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볼 수도 없고 어두운 밤이 찬란한 아침으로 변하는 기적을 볼 수 없다. 멋들어지고 거창한 말을 집어치우더라도 간단한 여가거리인 영화관을 가는 것도 먼 나라 이야기다. 무수한 시각적 환영과 문자 자막으로 나열된 영화는 다수자인 일반인에게 팝콘을 곁들인 일상이겠지만, 하얀 눈의 사내에게 영화는 듣고 상상하는 것에 그친다.

하얀 눈의 사내는 이제까지 상상에서 그쳤던 영화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시각적 영역이라 믿었던 영화를 시각장애인이 만든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그는 편견과 선입견, 차별로 높은 성을 쌓은 다수자의 사회에게 보란 듯이 반격에 나선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 그의 도전은 어떤 의미에서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 도전의 이름은 ‘손끝 시네마’, 사내의 손끝에서 만들어질 영화는 올해 6~7월 중에 공개될 예정이다. 기대하시라.

조두호 수원미술전시관 학예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