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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의 도시 이야기] 중세도시의 또 다른 얼굴- 부르주아와 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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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초기는 서슬 퍼런 영주의 권력과 하루하루를 땅을 파면서 살고 있었던 농노만을 생각해보아도 암울한 시기였음은 틀림없다. 굳건히 닫힌 성문 안 쪽에서 영주나 귀족이 포도주를 마시면서 식사를 할 동안 시민이나 자유민들은 물건 하나 만들기에 시간을 다 보내야했으며 농노들은 피땀을 짜내며 땅을 파야만 했으니 이 얼마나 불공평하고 암울한 사회였단 말인가.

게다가 모든 신분이 세습제였으니 한 번 농노는 영원한 농노이며 한번 귀족은 영원한 귀족이었으니 땅을 파고 있거나 물건을 만들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을 법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귀족으로 태어나지 못한 자신의 생을 원망하고 후회했을까. 언젠가 참담한 현실을 바꾸리라 생각에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성 밖은 이미 도시도 아니었다. 삶의 전장(戰場)이었다.

드디어 기회가 오고야 말았다. 근 200여년을 끌고 온 십자군 원정 실패와 이에 따른 교황권의 약화 등으로 중세의 질서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12세기경에 접어들면서 십자군 시절 왕성했던 동방 무역의 결과 상공업도시가 번창한다 싶더니만 급기야는 봉건영주로부터 독립하며 그 전의 모습과는 딴 판이 된 도시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인구가 중세 초기의 2배에 달하기 시작한 13세기 무렵에는 이미 몸이 자유로워진 농노들과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몰려들게 되었다. 상업은 더욱 중요한 돈벌이 수단이었고 상업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었고 그 곳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그것이 곧 도시가 되었다.

교통이 편하고 돈이나 상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용이한 지역으로는 당시 잘 나가는 상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킬만한 곳은 이미 도시화가 진행된 곳(civitas)이나 아니면 예전에 봉건 영주들이 자리를 틀고 있던 굳건하고 안전한 성(城, bourg)이었다.

그러나 중세도시가 다 그렇듯이 세력과 숫자가 늘어난 상인들을 충분히 수용할 만한 도시나 성이 없었기에 이들은 특히 성 문 근처인 포르타(porta)에 모여 거주하게 되었다.

그 세력은 점점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자본과 화폐가 그곳으로 집중하게 되었다. 성 주변에서 상공업을 통해 재력을 확보하였다하여 성(bourg)이라는 어원을 지닌 부르주아(bourgeois)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태생적 귀족과는 다른 자본력으로 무장한 신흥 귀족의 탄생이었다.

상업은 당연히 산업을 자극하기 시작하였고 수많은 예술가와 장인들이 화폐가 몰려있는 도시나 포르타에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솜씨 좋은 장인들은 화폐와 부르주아에 종속되는 또 다른 상업적 계층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10세기 중엽 내지 11세기 이후 상업 및 수공업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동업조합인 길드(guild)를 조직해 마스터 아래서 특정 수공업에 참여할 자격과 조건을 통제하거나 품질 정도와 가격 등을 나름대로 정하면서 독점적인 권리를 누렸던 장인들이 이제는 거대해진 상업 자본에 얽매이면서 막강한 귀족이나 신흥 부르주아의 보살핌 아래 자신이 만든 구두나 가방에 인두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고 있었다. 인두로 지진 갈색 글씨의 모양을 나타내는 브랜드(brand)라는 이름은 바로 이렇게 태어나고 있었다.

동시에 화폐의 힘 앞에 예술과 직능과 노동이 종속되면서 그렇게 근대라는 시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김영훈 대진대 건축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