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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은 부자병원이다, 서민들이 보기에는

‘13층 특실’은 회장님 전용이었다 ‘의료양극화’가 너무도 뻔한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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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언저리의 어느날. P기자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부장님, 왔어요. 회장 부인이요. 지금 막 들어갔어요.” 아주대학교 병원 13층 특실의 용도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대우그룹 회장님’을 위한 특실소문은 사실이었다. 기업이 풍비박산이 났어도 회장님 전용특실만은 여전이 남아 있었다.

 

불법이니 적법이니를 따질 일은 아니다. 병원 건립자를 위한 배려라고 봐주면 그만일 수 있다. 하지만 병원측 누구도 이 병실의 존재를 입에 담지 않았다. 병원 홍보팀이 해야 하는 중요 역할중엔 이 특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걸 막는 일도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 시설을 갖춘 병원, 그 중에 가장 전망 좋은 방, 일반 특실 몇 개를 합쳐 놓은 크기, 언제든 한 사람만을 위해 준비돼 있는 공간. 없는 이들의 눈에 ‘회장님 특실’은 있는 자들이 누리는 반칙이었다. 10년전 봤던 의료양극화의 모습이다.

 

비슷한 문제로 요즘 여의도가 시끄럽다. 한나라당이 밀어붙이는 영리병원 얘기다. 이명규 의원의 첫 개정안은 지난 12일 자진철회됐다. 악화되는 여론 앞에 ‘다시 한번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게 철회의 변이었다. 그런데 불과 나흘 뒤, 같은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이 다시 들고 나왔다.

 

‘경제자유구역의 성패는 외국 자본유치다. 이를 위해서는 외국인을 위한 교육·의료 개방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앞선 개정안(이명규 의원 案)을 수정보완했다고 강조했다. 내국인이 들어 갈 수 있는 병상수를 50%로 제한한 게 눈에 띄는 정도다.

 

그게 그거다. 반대와 우려는 여전하다. 되레 이렇게까지 밀어붙이는 저의가 뭐냐고 사람들이 묻고 있다.

 

영리병원의 궁극적 목적은 영업이익창출이다. 영업이익창출의 현실적 목표는 매출증대다. 매출증대를 기대한다면 의료의 공공기능을 일정부분 버려야 한다. 첨단 의료시설과 세계적 의료진을 확보해야 하고, 이를 무기삼아 매출을 올려줄 수 있는 계층을 공략해야 한다.

 

이 공략의 대상이 부유층이다. 비싼 입원비도 거뜬히 낼 수 있는 돈 많은 환자들이다. 자연스레 사회는 돈 많아서 영리병원 가는 환자와 돈 없어서 동네 병원 가는 환자로 갈라서게 된다. 의료양극화다. ‘절대로 의료양극화는 오지 않는다’는 장담이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하필 삼성이고 하필 일본자금이다. 송도 영리병원의 우선협상대상자(ISIH-Incheon Songdo International Hospital)지분은 삼성 주도 국내 자본 40%에 일본 다이와증권캐피탈 60%다.

 

삼성은 언제나 1등이었다. 몸 값도 제일 비쌌다. 에버랜드는 제일 멋진 대신 제일 비싸다. 래미안 아파트도 제일 좋은 대신 제일 비싸다. 의료분야라고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나는 언제든지 삼성의료원에 입원할 수 있어’라는 말은 ‘나는 힘 있고 성공한 그룹에 속해 있어’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서민들에게 삼성의료원은 꿈이다. 그런 삼성이 작정하고 만드는 영리병원. 어떤 모습이겠나.

 

일본 지분 60%도 여간 찜찜하지 않다. 항일이니 극일이니 하는 촌스런 논리에 매달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다르다. 한나라당 의원이 일본 자본의 영리병원 설립을 밀어붙이던 바로 그날, 공교롭게 일본 동경 한 복판에서는 한류방송금지를 요구하는 대규모 반한(反韓) 시위가 열렸다. 해주지 말아야 할 이유는 아닐지 몰라도 서두르지 말아야 할 이유로는 충분하다.

 

ISIH 영리병원은 재벌병원이고 부자병원이다. 그리고 일본이 이익금을 챙겨갈 왜색병원이다.

 

먹을 것 없어 굶는 것 만큼이나 서러운 게 돈 없어 치료 못받는 거다. ‘회장님을 위한 13층 특실’ ‘영리병원에 몰려드는 부자환자’…. 이런게 다 시민들 맥 빠지게 하는 거다. 보험료는 뭉텅뭉텅 빼가면서 돌아오는 공공의료서비스는 아직도 멀었다. 공공의 재화가 넘쳐 민간의 재화를 채워줄만큼 여유가 있는 나라도 아니다.

 

언젠가 해야겠지만 반드시 지금인 것은 아니고, 혹시 지금이 그때라 할지라도 이렇게 서두를 일은 아니며, 누군가 해야한다고 해서 꼭 이들이 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김종구 논설위원